항목 ID | GC080006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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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辛東根 |
영어공식명칭 | Sin Donggeun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장순순 |
활동 시기/일시 | 1910년 - 신동근 신동근정미소 설립 및 경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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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36년 - 신동근 부안미곡상조합 평의원으로 재직 |
활동 시기/일시 | 1946년 - 신동근 남선염업 운영 |
몰년 시기/일시 | 1966년 - 신동근 사망 |
출생지 | 신동근 출생지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 |
성격 | 교육가|기업가 |
성별 | 남 |
본관 | 영월(寧越) |
대표 경력 | 부안미곡상조합 평의원|낭주학회 3대 이사장 |
[정의]
전라북도 부안 출신의 교육가이자 기업가.
[개설]
신동근(辛東根)[?~1966]은 전라북도 부안 출신의 교육가이자 기업가이다. 일제 강점기 초기인 1910년에 전라북도 부안에 신동근정미소(辛東根精米所)를 설립·운영하는 등 대규모 정미업을 경영했고, 운수업에도 종사하였다. 광복 이후 부안여자중·고등학교 건립에 300석을 쾌척했고, 낭주학회 이사장으로도 재임하였다. 곰소 염전을 인수하여 남선염업의 사장으로 활동했고, 오성사(五星社)의 사장도 지냈다.
[활동 사항]
일제 강점기인 1936년 기록에 의하면, 신동근은 1910년(순종 4) 전라북도 부안에서 신동근정미소를 설립·운영하기 시작해 1936년 1월 현재 종업원 50명을 거느리고 있으며, 군산 등지를 대상으로 연간 5만 가마를 생산·판매하여 연매출이 50만 원에 달했다고 한다. 또한 당시에는 정미소 외에도 비료 공급 관련 사업과 화물 자동차 운수업도 경영 중이었고, 1936년 1월 현재 부안미곡상조합(扶安米穀商組合) 평의원(評議員)으로도 재직하고 있었다.
광복 후인 1946년에는 일본인이 개발하던 곰소의 염전을 인수하여 남한 유일의 천일염 생산업체인 남선염업의 기반도 구축하였다. 1956년에 간행된 『전국 주요 기업체 명감(全國主要企業體名鑑)』에는 1956년 당시 전라북도 부안군 산내면 용서리[현 진서면 진서리]에서 주식회사 남선염업(南鮮鹽業)을 경영하고 있었다고 되어 있다. 기업 경영뿐만 아니라 지역 교육 및 자선 사업에도 관심이 많았고,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지극한 효자로 주변에 소문이 자자하였다. 자신의 회갑 때는 잔치 대신 백미 30가마를 인근 영세민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부안여자중학교·부안여자고등학교 건립에 300석을 쾌척했고, 낭주학회 3대 이사장도 지냈다. 신동근은 1966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