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656 |
---|---|
한자 | 金洛先 |
영어공식명칭 | Kim Naksu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재철 |
출생 시기/일시 | 1884년 - 김낙선(金洛先)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2월 - 김낙선(金洛先) 의병 활동 시작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4월 15일 - 김낙선(金洛先) 군수품 수합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4월 18일 - 김낙선(金洛先) 군자금 모금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4월 25일 - 김낙선(金洛先) 체포 |
몰년 시기/일시 | 1913년 10월 10일 - 김낙선(金洛先)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김낙선(金洛先) 건국 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부안군 - 전라북도 부안군 주산면 |
활동지 | 흥덕군 -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
활동지 | 부안군 -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
활동지 | 부안군 -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 신리 화전마을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부안 출신의 의병.
[활동 사항]
김낙선(金洛先)[1884~1913]은 부안군 소산면 운곡리[현 부안군 주산면]에서 태어났다. 25세 때인 1909년(순종 3) 2월 서종채(徐鍾蔡)의 의병 부대에 들어가 활동하였으며 4월부터는 국호남(鞠湖南)의 의병 부대로 옮겨 부안과 흥덕[현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의 옛 고을]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909년 4월 15일 김낙선은 국호남의 지휘로 채봉선(蔡鳳善)·최동이(崔同伊)·박춘집(朴春楫) 등 동료 의병 15명과 함께 총 10자루를 휴대하고 흥덕군 입현촌 임 모의 집에 들어가 “우리는 의병인데 생모시를 내라.”고 하여 생모시 300자를 군자금으로 수합하였다. 4월 18일에는 부안군 입하면 입석리[현 부안군 보안면] 김형량(金亨亮)의 집에 들어가 70냥의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4월 25일에는 부안군 건선면 화전동[현 부안군 줄포면 신리 화전마을] 김 모 집에 들어가 엽전 45관문의 군자금을 모금하다 줄포 순사대에 체포되었다.
재판 기록에, 법정에서의 진술과 사법 경찰관의 피고에 대한 청취서, 검사의 피고에 대한 신문 조서 및 김균철(金均喆)의 고소장에 의거하여 그 증거가 충분하다고 밝히고 있다. 김낙선은 1909년 7월 18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15년을 언도받았다. 1912년 9월 13일 은사(恩赦)에 관한 조서(詔書)에 기초하여 특전으로 형이 징역 5년으로 변경되었으나 1913년 세상을 떠난 것으로 미루어 옥사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상훈과 추모]
1995년 건국 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