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5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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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海州吳氏 |
영어공식명칭 | Haeju Ossi|Haeju O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동희 |
본관 | 해주 - 황해도 해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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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해주 오씨 입향지 - 전라북도 부안군 |
세거|집성지 | 해주 오씨 세거지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내요리|상서면 장동리|주산면 종산리|하서면 반암리|행안면 대초리 |
성씨 시조 | 오인유(吳仁裕)|오현보(吳賢輔) |
입향 시조 | 오세창(吳世昌)|오영손(吳寧孫)|오시연(吳時延)|오시호(吳時浩) |
[정의]
오인유·오현보를 시조로 하고, 오세창·오영손·오시연·오시호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부안군의 세거 성씨.
[연원]
해주 오씨(海州吳氏)는 오인유(吳仁裕)를 시조로 모시는 경파(京派)와 오현보(吳賢輔)를 시조로 모시는 향파(鄕派)의 두 계통이 있다. 해주 오씨는 모든 오씨의 큰 집이라고 할 만큼 많은 인물들이 나온 명문가이다.
오인유의 14세손 오윤겸(吳允謙)과 오정방(吳定邦)의 후예들에서 현달한 인물들이 많이 나왔다. 오윤겸은 인조(仁祖) 대에 영의정에 올랐고, 오윤겸의 현손 오명항(吳命恒)은 우의정에 올랐다. 오인유의 19세손 오원(吳瑗)과 20세손 오재순(吳載純)은 대제학을 역임하였다. 해주 오씨는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 관직에 적극 진출하여 상신 두 명, 대제학 세 명, 공신 두 명, 청백리 한 명 등 많은 현신을 배출하였는데 조선조에 문과 급제자가 100여 명이나 나왔다고 한다.
[입향 경위]
조선 전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부안 성씨조에는 해주 오씨가 나오지 않는다. 1790년대 작성된 『호남읍지(湖南邑誌)』 부안 성씨조에도 해주 오씨는 없고 군위 오씨(軍威吳氏)만 실려 있다. 그러다가 1887년(고종 24) 편찬된 『부안지(扶安誌)』에 해주 오씨가 나온다. 이로 미루어 해주 오씨들은 부안 지역에 뒤늦게 들어온 것 같다.
부안 여러 지역에 해주 오씨가 살고 있지만 오랜 역사를 가진 집성촌은 없다. 완월당파(翫月堂派)인 오세창(吳世昌)이 상서면 장동리에 처음으로 들어와 살았다. 오세창은 임진왜란 전후 안악 군수를 지내고 경기도 용인에서 살다가 부안으로 들어왔다고 전한다. 오영손(吳寧孫)은 임진왜란 이전에 행안면 대초리로 들어왔다. 사인공파(舍人公派) 오시연(吳時延)은 조선 후기 전라남도 영광에서 부안읍 내요리로 들어왔고, 역시 사인공파인 오시호(吳時浩)도 조선 후기 영광에서 주산면 종산리로 들어왔다. 하서면 반암리에도 사인공파가 들어와서 살았다.
[현황]
2015년 인구 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부안군 전역에는 오씨가 953명 살며, 이 중 해주 오씨는 638명으로 3분의 2 정도이다. 1991년 발간된 『부안군지』에는 부안읍, 주산면, 행안면, 보안면, 백산면, 상서면, 줄포면 등지에 해주 오씨가 살고 있다.
[관련 유적]
해주 오씨 재실인 염수재(念修齋)가 부안군 행안면 진동리에 있으며, 오봉건(吳奉建)을 배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