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3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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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倭寇侵入 |
영어공식명칭 | Invasion by Japanese Pirate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장순순 |
[정의]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까지 전라북도 부안 지역 등 우리나라와 중국의 해안 지역에 출몰하여 약탈을 일삼은 일본 해적 집단의 침입.
[개설]
왜적(倭賊), 즉 왜구(倭寇)의 침입은 삼국 시대에도 빈번하였다. 그러나 고려 멸망의 주 요인의 하나였을 정도로 고려 말과 조선 초에 특히 피해가 컸다. 왜구는 본래 ‘왜가 도둑질한다’라는 뜻이었지만, 고려 말 이후 침입·약탈·살육·방화 등의 만행 규모가 커지고 빈번해지면서 일본인들의 해적 행위를 표현하는 용어가 되었다.
[역사적 배경]
왜구 발생의 주요 배경으로는 당시 남북조(南北朝)의 혼란기였던 일본 국내 상황과 여원 연합군의 일본 원정 실패를 많이 언급한다. 당시 일본이 남조·북조의 2개 정치 세력으로 57년간 양분되어 중앙 통치권이 지방에까지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사회적 불안과 함께 농지를 잃은 농민들과 경제적으로 무력해진 하급 무사들의 수가 증가했고, 특히 남조 세력권 안에서 적고 척박한 토지로 인해 기근이 심했던 규슈[九州] 지방의 쓰시마[對馬]·마쓰우라[松浦]·이키[壹岐] 등 일부 지역 세력들이 한반도와 중국 해안을 침략하는 해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여원 연합군의 일본 정벌 실패로 일본인들이 고려와 원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되고, 고려와 원이 봉쇄와 함께 일본과의 통교를 차단하게 됨으로써, 일본인들이 대륙의 물자를 획득하기 위해 한반도와 중국 해안에 출몰하여 폭력을 동원한 약탈 행위를 일삼게 되었다는 것이다.
[경과]
왜구의 전라도 침탈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1323년(충숙왕 10) 6월 군산도에서 회원(會原)의 조운선(漕運船)을 약탈하고, 이어 7월에 추자도(楸子島)와 인근 여러 섬을 약탈하고 많은 백성들을 포로로 붙잡아 가자, 고려 조정에서 내부 부령(內府副令) 송기(宋圻)를 전라도에 급파하여 왜구 100여 명을 참살했다는 기록이다. 그리고 공민왕(恭愍王) 때인 1354년(공민왕 3) 4월 왜구가 전라도 해역에 나타나 조운선 40척을 노략질했으며, 이듬해인 1355년 4월에도 조운선 200척을 노략질 했다는 기록도 있다.
1358년(공민왕 7) 7월에는 왜구가 검모포(黔毛浦)[현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진서리]에 침입해서 전라도의 세미(稅米)를 실은 조운선을 불태워 많은 고려 병사를 사상하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왜구가 전라북도 부안 지역에 침입한 주 이유는 침입의 주 목적이 미곡 약탈이었고, 당시 부안 지역에 고려 시대 60포구 중 하나인 제안포(濟安浦)[현 부안군 줄포면]에 고려 12창(倉)의 하나인 안흥창(安興倉)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구의 조운선 침탈은 1364년(공민왕 13) 3월 전라도의 조운선이 왜적에 막혀서 갈 수 없었다는 내용을 비롯해 공민왕 대에만 12회 이상이었다는 사실이 그런 점을 잘 보여준다.
우왕 즉위년인 1374년 이후로는 왜구의 고려 침탈 횟수가 더욱 늘어났다. 당시 왜구의 전라북도 부안 지역 침탈은 1376년(우왕 2) 9월과 10월에 있었다. 9월에는 전라도 내륙 지역인 고부·태인과 함께 보안[현 부안군 보안면] 지역까지 침입하였다. 내륙 지역까지 침입한 것은 왜구의 침탈로 조운선이 막히자 고려가 육로를 통해 미곡을 운반했기 때문이었다. 10월에는 기병, 보병 등 1,000여 명의 왜구들이 웅연(熊淵)[현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곰소]에 배를 대고 적현(狄峴)[현 호벌치]인 유정재[부안군 보안면과 상서면 사이에 있는 고개]를 넘어 부령현(扶寧縣)[현 부안군 부안읍]까지 침입하고 동진교(東津橋)를 파괴하여 고려군이 부안 지역으로 넘어오는 것을 막았다. 이에 변안열·나세·조사민 등이 이끄는 고려군이 다리를 재설치하며 왜구를 공격해 행안산(幸安山)[부안군 행안면 진동리와 부안읍 경계에 있는 산]까지 도망간 왜구를 소탕하였다.
[결과]
고려 우왕(禑王) 초기 이후로는 왜구의 전라북도 부안 지역 침입 사례를 보여주는 직접적인 기록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동진강(東津江) 가에 배를 정박한 후 전라북도 정읍(井邑)까지 침략하여 약탈을 자행하는 등 왜구의 전라도 일대 침입 사례가 지속적으로 보이고 있다. 따라서 전라북도 부안 지역도 고려 멸망 때까지 왜구의 침입에 끊임없이 노출되어, 왜구의 만행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