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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1330
한자 湖南邑誌扶安縣[1871]
영어공식명칭 Honameupji-Buanhyeon[1871]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문헌/전적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최진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편찬 시기/일시 1871년연표보기 - 『호남읍지』「부안현」[1871] 편찬
간행 시기/일시 1871년연표보기 - 『호남읍지』「부안현」[1871] 간행
소장처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읍지|지리지
간행자 전라 감영(全羅監營)
규격 30.4×19.9㎝

[정의]

1871년에 편찬된 『호남읍지』에 수록된 부안현 읍지.

[편찬/간행 경위]

『호남읍지(湖南邑誌)』는 19세기 고종 초기의 정국 운영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자료이다. 고종 연간에는 탕평군주(蕩平君主)를 모범으로 삼아서 다양한 문물 제도가 재정비됨으로써, 세도 정치기에 단절되었던 통치 제도의 연결고리를 회복하고자 하였다. 『호남읍지』는 바로 18세기의 전통을 재결집해 국가의 지방 통치에 활용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1871년(고종 8)에 편찬되었다.

[형태/서지]

『호남읍지』[1871]는 총 10책이며, 지도[부분 채색]의 크기는 30.4×19.9㎝이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호남읍지』「부안현」[1871] 『호남읍지』 6책에 수록된 전라도 부안현의 읍지이다. 본 읍지의 맨 앞에 채색 지도 1장이 수록되어 있으며, 마지막에 「위도진 진지(蝟島鎭鎭誌)」와 「검모포진 진지(黔毛浦鎭鎭誌)」가 첨부되어 있다. 부안현은 현재의 행정 구역으로는 전라북도 부안군 지역에 해당하는데, 백산면은 당시 부안현에 속하지 않고 고부군에 속하였다.

읍치는 부안군 부안읍 서외리, 동중리 일대에 있었다. 지도는 산천, 도로를 표시하고, 읍치와 각 면을 표시하였다. 읍치는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관아 건물도 그려져 있다. 그 밖에 도로와 연결되어 동진강(東津江)을 건너 고부계(古阜界)로 이어지는 평교(平橋)·노교(蘆橋) 등의 다리, 내소사(來蘇寺)·실상사(實相寺) 등 사찰, 검모포진(黔毛浦鎭) 등 진보(鎭堡). 계화도(界火島)·만좌서(晩坐嶼)·두리도(頭里島)·비안도(飛鴈島)·하왕등도(下旺登島)·상왕등도(上旺登島) 등의 섬이 표시되어 있다. 「위도진 진지」는 건치 연혁(建治沿革), 전선(戰船), 군병(軍兵), 환곡(還穀), 어세(漁稅), 방군(防軍) 등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고, 「검모포진 진지」는 건치 연혁, 상납(上納), 전선 등의 내용으로 수록되어 있다.

『호남읍지』「부안현」[1871] 은 분량은 많지 않으나 진공(進貢), 상납, 호구(戶口), 전총(田摠), 전세(田稅), 대동(大同), 균세(均稅), 봉름(俸廩), 창고(倉庫), 조적(糶糴) 등 항목을 설정하여 조세 관련 정보를 충실히 기록하였다. 호수는 7,932호이고 인구수는 남녀 합하여 3만 8468명이다. 전결은 3,920결(結)이 기록되었다. 『호남읍지』「부안현」[1871]에 기록된 호구와 전결의 수로 미루어 볼 때 부안현은 조선 시대 중간 규모의 고을이었음을 알 수 있다. 부안은 어장(魚場)으로 유명하여 균세(均稅) 항목에 해세전(海稅錢)이 1,491냥(兩)이나 기록되었다. 조적 항목은 각종 환곡 명색과 수량을 자세히 기록하였는데, 호조 별비미(戶曹別備米)가 병인(丙寅)[1866] 별비미, 정묘(丁卯)[1867] 별비미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871년 읍지 상송령에 맞추어 새로 읍지를 작성하여 올린 것으로 판단된다.

[의의와 평가]

『호남읍지』[1871]는 1871년에 총 10책으로 편찬되었다. 제6책에 부안(扶安)·고부(古阜)가 수록되어 있다. 본 읍지는 조세·군사 정보가 자세한 반면에 장시(場市), 선생안(先生案) 등의 항목이 없고 인물 정보도 소략하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부안읍지(扶安邑誌)』[想白古 915.14-B85]는 1877년경 편찬되어 상대적으로 본 읍지와 편찬 시기가 근접하고, 『호남읍지』「부안현」[1871]에는 없는 선생안이 수록되었으며 고을 인물에 관한 정보도 매우 풍부하여 보완이 된다. 군기 항목에 보유하고 있는 군기의 종류와 수량을 시기별로 자세히 기록한 것으로 미루어 부안현이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보여준다. 『호남읍지』「부안현」[1871]은 조선 전기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조선 후기의 『여지도서(輿地圖書)』 이후 처음으로 도(道)에서 제작한 읍지에 해당한다. 18세기 정조 때 시도된 『여지도서(輿地圖書)』의 보완 작업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으며, 이후의 읍지들과 지역 전통을 기록한 사찬(私撰) 읍지의 성과 등을 모아 편집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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