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13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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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扶安-水沒民-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성식 |
관련 시설 | 부안 댐 -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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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시설 | 부안 댐 물 문화관 -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부안댐로 290[중계리 539-7] |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에 부안 다목적 댐이 축조되면서 발생한 수몰민의 삶 이야기.
[개설]
부안 다목적 댐은 서해안 시대 개막과 함께 산업화 및 도시화가 촉진되어 각종 용수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계획되었다. 특히 전라북도 부안군과 고창군은 늘 식수 부족을 겪는 지역이었다. 그러한 데다가 1991년부터 시작된 새만금 간척 사업 지구 개발 예정지에 대한 안정적 용수 공급이 필요하여 부안 댐 건설이 추진되었다. 부안 댐 축조로 인해 부안군에서 대대로 살아온 9개 마을 86세대 259명[부안 댐 망향비 기준]의 수몰민이 발생하였고, 자유 이전을 원칙으로 한 결과 이들은 고향 땅을 등진 채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9개 마을은 조령마을과 석문동마을, 마상치마을, 중계마을, 용기마을, 잠두마을, 신적마을, 사자동마을, 서운마을 등이다. 현재 부암 댐에 조성된 부안 댐 물 문화관 전시실에서 당시 수몰된 마을 위치와 마을별 수몰민 명단을 확인할 수 있다.
[부안 댐 개요]
기존의 수자원 개발 정책은 주로 대하천 본류에 대규모의 다목적 댐을 건설하여 용수 공급 및 수력 발전, 홍수 예방 등을 목적으로 시행함으로써, 중소 유역에서는 댐 건설에 따른 다양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따라서 대규모 댐 건설 적지(適地)의 한계와 과다한 보상비 등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유역 면적 50㎢~500㎢, 총저수량 2㎥~110만 ㎥ 규모에 해당하는 다목적 댐을 건설하게 되었으며, 부안 댐이 그러한 시행 방침에 의해 축조된 첫 번째 중규모 다목적 댐이라고 할 수 있다. 부안 댐이 위치한 변산반도의 직소천(直沼川)은 동진강(東津江) 유역에 인접해 있으며, 그 형상은 사변형에 가깝다. 유역 면적은 64㎢이고 유로 연장은 18.9㎞이다. 직소천은 부안군 상서면 창수동의 우슬재에서 발원하여 서해로 유입한다.
부안 다목적 댐은 1991년 12월에 착공하여 1996년 12월에 준공하였다. 댐 형식은 콘크리트 표면 차수벽(表面遮水壁)형 석괴 댐으로 높이는 50m, 길이는 282m이고, 총저수 용량은 5030만 톤, 유역 면적은 59㎢, 저수 면적은 3㎢이다. 또 연간 용수 공급량은 3510만 ㎥, 홍수 조절 용량은 930만 ㎥이고, 소수력 발전은 193㎾h/h를 생산하고 있다. 부안 댐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국립 공원 내에 건설된 다목적 댐이다. 댐 주변에는 기암괴석(奇巖怪石), 천연기념물과 빼어난 풍광이 어우러진 살아 있는 생태계가 펼쳐져 있다. 부안 댐은 현재 부안군과 고창군 지역민들에게 식수를 공급하고 있으며, 전라남도 영광의 한빛원에도 전력 생산에 따른 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향후에는 새만금 내수면 개발 사업 지역에 생활용수 및 공업용수를 공급하게 된다.
[부안 댐과 수몰민]
부안 댐은 변산반도 국립 공원 내에 있다. 이른바 내변산이라고 부르는 변산반도 내륙 지역이다. 주변에는 의상봉(義湘峯)[509m], 쌍선봉(雙仙峰), 관음봉(觀音峰) 등 수려하고 기묘한 바위산이 즐비하다. 내변산은 직소 폭포(直沼瀑布)와 어수대(御水臺), 월명암(月明庵)과 내소사(來蘇寺) 등이 명산대찰(名山大刹)을 이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선나무와 호랑가시나무, 꽝꽝나무, 후박나무 등 천연기념물이 군락을 이루며 서식하는 곳도 변산반도이다.
부안 댐으로 인해 이제는 호수가 된 부안호의 발원지는 부안 댐에서 16㎞ 떨어진 변산 서쪽 신성봉 신선대 선선샘이다. 이곳에서 발원하여 복재 분수령 물과 합류하여 서출동류(西出東流)하면서 봉래 구곡(蓬萊九谷)의 제1곡인 대소(大召)에 이른다. 다시 아차봉 물줄기와 합류하여 봉래 구곡의 제2곡인 직소 폭포를 형성한다. 이어서 변산 북쪽 분초대에서 내려오는 내인동 계류와 합류하고, 더 흘러내리면서 직소천을 이룬다.
중계천은 계곡이 깊은 데다 교통이 발달하지 못한 탓에 내변산의 오지로 불렸다. 반면에 중계천은 변산반도 최고의 산림 휴양지였다. 외변산이 변산 해수욕장과 격포 채석강, 모항 해수욕장 등 삼면이 확 트인 바다 경관지라면, 내변산은 직소 폭포와 백천내, 중계천이라는 비경과 청정 계곡이 압권이었다.
백천내는 물이 맑아 백천(白川)이라 부르기도 하고, 물줄기가 많아 백천(百川)이라도 한다. 옛날부터 시인 묵객들이 백천 계곡을 찾아 노래하였다. 부안 출신이고 황진이(黃眞伊)와 함께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 시인 매창(梅窓)은 이곳 어수대(御水臺)를 찾아 시 한 수를 지었다. 매창의 변산 유람은 1606년(선조 39)~1608년(선조 41)경으로 추정된다. 매창은 이때의 심회를 「어수대에 올라[登御水臺]」, 「천층암에 올라[登天層菴]」, 「월명암에 올라[登月明庵]」, 「봄날을 원망하며[春怨]」 등의 한시로 남겼다. 다음은 매창이 남긴 한시 「어수대에 올라」이다.
왕재천년사(王在千年寺)[천년(千年) 옛 절에 임은 간 데 없고]
공여어수대(空餘御水台)[어수대 빈터만 남아 있구나]
왕사빙수문(往事憑誰問)[지난 일 물어볼 사람도 없이]
임풍환학래(臨風喚鶴來)[바람에 학이나 불러 볼거나]
이러한 절경에 부안 댐이 들어선 것이다. 부안 댐은 1군 2면 3개 리에서 수몰민을 발생시켰다. 부안군 변산면에서는 중계리와 대항리가, 상서면에서는 청임리가 대상 지역이 되었다. 수몰지만 295만 7000㎡에다가 19만1000㎡의 공사용 부지가 편입됨으로써 314만 8000㎡가 수용되었다. 이로 인해 부안군에서 대대로 살아온 9개 마을 86세대 259명[부안 댐 망향비 기준]의 수몰민이 발생하였고, 자유 이전을 원칙으로 한 결과 이들은 고향 땅을 등진 채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9개 마을은 조령마을과 석문동마을, 마상치마을, 중계마을, 용기마을, 잠두마을, 신적마을, 사자동마을, 서운마을 등이다. 현재 부암 댐에 조성된 부안 댐 물 문화관 전시실에서 당시 수몰된 마을 위치와 마을별 수몰민 명단을 확인할 수 있다.
부안 다목적 댐의 공사용 부지 및 수몰지 용지 매수 및 손실 보상은 1991년 1월 24일 한국수자원공사와 전라북도 간에 보상 업무 위탁 협약을 체결하여 그해 2월 25일에 개소한 부안 댐 건설 지원 사업소에서 실시하였다. 공사용 부지 매수 및 손실 보상은 진입 도로, 토지 및 지장 물건에 대하여 같은 해 5월부터 보상 기본 실태 조사를 실시하였고, 동년 7월부터 보상을 시행하였다. 부안 댐 부지 및 수몰지에 대하여는 1992년 2월부터 그해 5월까지 기본 실태 조사를, 같은 해 7월부터 용지 매수 및 손실 보상을 시행하였다.
[부안 댐 수몰민의 삶 이야기]
부안 댐 수몰민들은 정든 고향과 이웃을 떠나야 하는 이산의 아픔을 달래고 서로를 기억하기 위해서, 본인들이 직접 건립 위원회를 구성하여 1995년 9월에 망향비를 세웠다. 부안 댐 정상의 댐 전망대 한구석에 망향비가 서 있는데, 한눈에 드러나지는 않는다. 광장 옆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나타나는 팔각정 뒤편에 숨겨진 듯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망향비는 부안문화원장 김민성이 비문을 짓고, 부안의 대표적인 조각가인 김오성이 제작하였다. 망향비는 일반적인 돌 비석 형태가 아닌 조각 작품으로 설치되었다. 이 작품은 실향민들의 통절한 심사를 다중의 인물로 표현하고 있어서 예술적 표현력까지 보여 주는 색다른 망향비라고 할 수 있다.
부안 댐 수몰민들은 해마다 이곳에서 망향제를 지내고 있다. 이 망향제는 부안군과 부안수자원공사가 후원하고 있다. 수몰민 망향제는 댐 건립으로 고향을 잃은 실향민들과 함께 모여 제를 올리고, 한마당 위안 행사를 통해 친목을 다지며, 지난날을 회상하며 고향 잃은 아픔을 달래고 고향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토론하는 형식으로 치른다. 망향제 추진 위원장은 “망향제를 지냄으로써 고향 잃은 실향민들에게 만남의 장을 마련하여 서로 우의와 화합을 다지고, 주민들 간에 새로운 소식과 정보를 교환함으로써 지역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망향비를 바라보면 수몰민들의 실향과 상실감을 짐작할 수 있어 마음이 숙연해진다. 망향비 비문은 다음과 같다.
“풍족한 젖줄 뒤에는 고향 잃은 수몰민 86세대 259명의 이산의 슬픔이 주저리주저리 흐르고 있는 것을 그대는 아는가. 끝을 모르게 만수로 넘치고 있는 이곳 부안 댐은 댐 높이 49m, 길이 280m, 총저수량 4154만 톤으로 부안 군민의 식수원이요 새만금 지구의 공업용수를 풍요하게 공급하는 수자원이지만, 댐이 생기기 전까지는 석문동에서 군막동을 거쳐서 중계로 신작로가 나 있었고 버스가 다녔으며 학교가 있었고 정다운 우리들의 집과 논밭이 있었고 석양에 소를 몰고 산나물을 캐던 우리의 쌈터이었다. 나무 하나 사금파리 하나에도 손때가 묻고 정이 뭉클한 우리의 보금자리였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물속에 잠겨 버린 내 분신, 이 세상 어느 곳에 가서도 영 찾을 수 없는 내 고향, 누대를 이어 온 역사와 가통을 한꺼번에 물속에 묻고 뒤돌아서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단장(斷腸)의 충정(衷情)을 그대는 아는가. 댐에 넘치는 물살은 모든 것을 묻고 말이 없구나. 이제는 다만 추억하고 회상하며 그때 그 시대를 그리워할 처지에 놓여진 것을 어찌하랴. 끝내 잃어버린 고향을 찾고 오래토록 생각하고 싶어 수몰민 모두의 뜻을 모아 망향의 애절한 심회를 후세에게 길이길이 전하고자 여기에 비를 세워 표하는 바이다.
1995년 9월
부안 댐 수몰민 망향비 건립 위원 일동”
당시 부안문화원장 김민성은 수몰민들로부터 망향비 비문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고 중계 계곡을 답사하였다. 늦은 여름철, 석문동에서 군막동을 거쳐 중계로 뻗은 비포장 신작로에는 댐 공사로 건축 토사를 가득 실은 대형 트럭이 먼지를 일으키며 내달리고 있었다. 도로의 먼지가 걷히자 우체부가 오토바이를 타고 정착지를 아직 찾지 못해 이주하지 못한 마지막 실향민들에게 우편물을 배달하고 있었다. 중계교 밑 맑은 계곡에는 늦더위를 피해 물놀이 온 가족들이 텀벙거리고 있었다. 이미 폐교가 결정되어 빈 중계국민학교에는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정원수마저 어디론지 옮겨져 빈자리만 청승맞게 남아 있었다. 공허해진 마을, 도로변에 폐가로 남은 빈집 벽체에는 아직도 ‘부안 댐 반대 죽어도 반대’ 현수막이 색이 바랜 채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나부끼고 있었다. 댐이든 간척이든 개발에는 반드시 빛과 그림자가 있는 법, 느닷없이 하루아침에 정든 고향을 강제로 떠나야 하는 수몰민들의 낙담과 절규가 빛바랜 현수막에서 여전히 들리는 듯하였다.
아직 하나 남은 초라한 구멍가게에 ‘대성 수퍼’란 간판이 버긋하게 걸려 있었고, 가게 안에서는 노파가 빈 음료수병 먼지를 털고 있었다. 노파는 이번 여름이 지나면 장사도 마지막이라고 하였다. 조상 대대로 이어 온 논밭과 가옥을 송두리째 물속에 묻어 버리고 떠나야 하는 이들의 숙명을 목도하면서 김민성은 얼굴 마주치기도 힘겨웠다. 김민성은 곧 수몰될 현장을 사진으로 남길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그들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도저히 셔터를 누를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황폐한 마을과 아직 떠나지 못한 주민들을 보면서, 그들이 애절한 심경을 비에 새겨 후손들에게 남기고자 하는 뜻을 비로소 깨달았다. 수몰 현장을 떠나면서 돌아오는 길에 김민성은 그들의 가슴속에 죽어서도 남아 있을 고향! 그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중계천 맑디맑은 물보다 더 맑고 더 깨끗함을 보았다.
[부안 댐 물 문화관]
부안 댐 물 문화관은 국민들에게 물의 소중함을 알리는 동시에, 국립 공원 변산반도 내의 수려한 자연 경광을 배경으로 한 부암 댐을 관광 자원화하는 데에 기여하고자 설치되었다. 물 문화관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국립 공원 지역에 위치한 부안 댐 광장에 있으며, 향후 새만금과 연계한 부안의 새로운 볼거리가 될 것이다. 물 문화관은 지하 1층~지상 3층 건물로 3개의 전시실 및 영상실을 갖추고 있다. 제1전시실은 물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와 생명의 물을 주제로 한 전시관이다. 물을 주제로 부안의 신비로운 자연물과 수중·수변 생태계를 보여 준다. 제2전시실은 ‘생명의 부안 댐’이 주제이다. 중계천 주변의 수몰 전 마을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조망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또 물의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 자연과 생명의 아름다움도 보여 주고 있다. 제3전시실은 ‘부안의 삶과 문화’를 주제로 하고 있다. 물의 과거, 현재, 미래를 주제로 제작된 영상을 보며 물의 소중함과 부안 댐의 역할 및 가치를 되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