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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1268
한자 遊格浦記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영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713년 - 강세황 출생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770년 5월연표보기 - 「유격포기」 저술
저자 몰년 시기/일시 1791년 - 강세황 사망
성격 기행문
작가 강세황

[정의]

1770년 강세황이 부안의 격포를 유람하고 지은 기행문.

[개설]

「유격포기(遊格浦記)」는 조선 후기 문예 부흥기였던 영조·정조 시대를 풍미한 문인화가로 시·서·화 삼절(三絶)로 일컫던 강세황(姜世晃)[1713~1791]이 1770년(영조 46) 해창(海倉)에서 해안선을 따라 격포항 만하루(挽河樓)를 유람하고 적은 글이다. 강세황은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의 스승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자는 광지(光之)이고, 호는 여러 개인데 대표적으로 표암(豹菴)이란 호를 사용했다. 「유격포기」는 그의 문집 『표암유고(豹菴遺稿)』 권4에 실려 있다.

[구성]

서두 부분에서 유람을 떠나게 된 정황이, 본문 부분에서 구체적인 유람 장소와 여정이, 마지막 부분에 감상이 드러나는 유람기의 일반적인 구성 방식을 취하고 있다.

[내용]

이 글은 서두 부분에서 작자가 격포 유람을 떠나게 된 정황이 드러난다. 1770년 당시 강세황은 둘째 아들의 임지인 부안에 있었는데, 그때 정읍 수령으로 있던 친구 임성여(任聖與)가 부안으로 찾아와 함께 격포 유람을 시작한다.

본문 부분에서는 구체적인 유람 장소와 여정이 드러난다. 정오에 해창에 도착해 보니 포구 밖의 바짝 세운 붓처럼 뾰족한 기이한 봉우리들이 인상적이다. 그런데 만조라서 나갈 수가 없어 조수가 빠지기를 기다리다가 저물녘 물살이 줄어들자 길을 떠난다. 해창에서 해안선을 따라 격포항 만하루까지 가는 여정이 드러나는데, 그 과정에서 끝없이 펼쳐진 검푸른 바다 모습, 진창에 빠지며 길을 가는 정황, 낙조의 장관 등을 서술한다. 그리고 포구들을 지나 밤 이경(二更)[밤 9시~11시]이 되어서야 겨우 격포 만하루에 도착한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눈앞에 펼쳐진 산과 바다의 승경(勝景)을 보고 ‘기이하고 환상적[奇幻]’이라며 탄성을 지른다. 늦은 밤에 도착해서 어둠과 안개 때문에 풍경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일행은 아침밥을 먹고 급히 만하루에 오른다. 만하루 누대 앞에는 5개의 봉화대가 늘어서 있고, 멀리 위도와 칠산 바다가 보였는데 황홀하고 괴이했다고 감탄한다.

「유격포기」 마지막 부분은 만하루에서 내려와 동행했던 친구 임성여가 중국 왕양명의 시를 읊은 것을 서술하여 격포에 대한 감상을 마무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유격포기」는 격포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묘사해 내고 있어 격포의 아름다움을 되돌아보게 하는 글이다. 산과 바다의 승경에 탄성을 지르는 모습이나 ‘진짜 신선이 되어 구름 밖에서 높이 나는 듯한’ 정황 등을 통해 격포라는 곳이 ‘신방 묘경(神方妙境)’[신묘한 경계와 오묘한 경지]의 장소가 된다. 또한 이 글을 보면, 강세황이 당시 만하루는 수군 진영(鎭營) 관아 앞에 있었고, 산허리에는 행궁(行宮)이 보인다는 내용이 있다. 따라서 이 글은 부안 수군 진영이나 행궁 등 역사적 장소에 대한 고증을 하여 격포의 역사적 의미를 되살릴 수 있는 자료로서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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