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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1267
한자 遊禹金巖記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변산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영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713년 - 강세황 출생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770년 무렵연표보기 - 「유우금암기」 저술
저자 몰년 시기/일시 1791년 - 강세황 사망
성격 기행문
작가 강세황

[정의]

1770년 강세황이 변산 일대를 유람하고 남긴 기행문.

[개설]

「유우금암기(遊禹金巖記)」는 조선 후기 시·서·화 삼절(三絶)로 일컬어진 서화가이자 평론가인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1713~1791]이 1770년(영조 46) 5월 전라북도 부안의 변산 일대를 돌아보고 기록한 기행문이다. 강세황의 자는 광지(光之), 호는 표암, 첨재(忝齋), 산향재(山響齋), 박암(樸菴), 의산자(宜山子), 견암(蠒菴), 노죽(露竹), 표옹(豹翁), 해산정(海山亭), 무한경루(無限景樓), 홍엽상서(紅葉尙書) 등 여러 가지를 사용했는데 ‘표암’을 대표적으로 사용했다. 32세 때 가난 때문에 안산(安山)으로 이주하여 이현환(李玄煥), 이광한(李匡煥) 등 이익(李瀷) 집안의 남인 지식인들과 교유하면서 시와 서화에 전념하였다. 61세에 처음 벼슬길에 올라 64세에 기로과(耆老科)에, 66세에 문신 정시에 수석 합격하였다. 병조 참의,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 등을 역임하고 할아버지 강백년, 아버지 강현을 이어 71세에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1785년 72세 때에는 건륭제 즉위 50년을 축하하기 위한 사행단의 부사(副使)가 되어 북경을 다녀왔다. 76세 때 금강산 유람을 하고 기행문과 실경을 그린 그림을 남겼다. 단원 김홍도(金弘道)와 신위(申緯) 등이 그에게 그림을 배웠다.

[구성]

「유우금암기」의 첫 부분은 변산 개암사(開巖寺)까지 이르는 여정이, 중간은 개암사에서 우금굴(禹金屈)→실상사(實相寺)월명암(月明菴)→용추(龍湫)[월명암]→내소사를 둘러본 여정이, 마지막은 다시 개암동 입구로 돌아온 여정이 드러나 있다.

[내용]

이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처음 부안 고을 서쪽 문을 나서는 것으로 유람 기행이 시작된다. 넓은 들녘을 달려 변산에 들어가서 동림서원유천서원[청계서원을 잘못 기재한 것으로 보임]을 지나 어지러운 소나무 사이에 있는 웅장한 건물 개암사에 들어선다. 개암사 절 뒤편에 있는 봉우리에 올라가서 바위 밑에 ‘옥천암’ 편액이 붙어 있는 우금굴을 둘러본다. 그리고 굴을 지나 가마로 이십 리쯤 가서 지금은 절터만 남아 있는 실상사에 이른다. 강세황은 실상사에서 하룻밤을 유숙하고 다음날 아침 ‘월명암이 승경’이라는 말을 듣고 미끄러운 얼음과 험한 바위를 뚫고 월명암에 이른다. 월명암에서 다시 직소 폭포 쪽으로 가는데 돌길이 너무나 위태로워 가마에서 내려 지팡이를 짚으며 엉금엉금 기어서 직소 폭포에 이른다. 직소 폭포를 따라 산 정상에 올라서 부안 해협을 굽어보고 내소사를 거쳐 다시 개암동 입구로 돌아온다.

[특징]

「유우금암기」 여정에 따라 강세황은 그림 「우금암도」를 그렸다. 우금암(禹金巖)→문현(文懸)→실상사→용추→극락암(極樂庵)으로 이루어진 그림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이 기행문은 「우금암도」와 동반 관계에 있는 것으로, 「유우금암기」에서 글로 묘사하고 있는 변산의 풍경을 그림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글은 유람 장소를 중심으로 시각적 정보에 집중하여 감각적 묘사를 통해 현장감을 전달하고 있는 점도 주요한 특징이다.

[의의와 평가]

강세황의 둘째 아들 강완이 부안 현감이었을 당시 강세황이 변산을 유람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변산의 웅장하고 빼어난 기세를 잘 표현하고 있다. 우금굴에서 실상사로 가는 길에서 만나는 맑은 물줄기와 층층 절벽들은 인간 세상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님을 묘사하고 있다. 또한 지금은 터만 남아 있는 실상사의 모습, 월명암까지 오르는 천 길 낭떠러지 같은 길에서의 죽을 고생이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다. 특히 월명암에서 직소 폭포에 이르는 돌길의 위태로움이 ‘지팡이를 짚고 엉금엉금 기어가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눈을 내뿜는 듯 구술이 튀듯이 그 기세가 지극이 기이하고 웅장하였으며 바람이 들이쳐서 그 소리가 숲과 골짜기에 울렸다.”는 직소 폭포에 대한 묘사는 실경을 보는 듯한 생생함을 전해 주고 있다. 이 글은 당시 변산의 아름다운 모습을 추적해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자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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