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11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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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扶安竹幕洞遺蹟 |
영어공식명칭 | Jukmak-dong site in Buan |
이칭/별칭 | 죽막동 제사 유적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유적/민간 신앙 유적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적벽강길 54[격포리 산33-3] |
시대 | 고대/삼국시대 |
집필자 | 이종철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2년 - 부안 죽막동 유적 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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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17년 10월 19일 - 부안 죽막동 유적 사적 제541호 지정 |
현 소재지 | 부안 죽막동 유적 -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적벽강길 54[격포리 산33-3] |
성격 | 유적지 |
관련 인물 | 개양할미 |
면적 | 21,284㎡ |
소유자 | 전라북도 부안군 |
관리자 | 전라북도 부안군 |
문화재 지정 번호 | 사적 제541호 |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죽막동의 해안 절벽에 있는 제사 유적지.
[개설]
부안 죽막동 유적은 중국·일본 등 동아시아 해상 교류의 중요한 길목에 있으며, 고대부터 지금까지도 뱃길 안전과 풍어(豊漁)를 기원하는 해양 제사가 이어져 오는 유적지이다. 이를 ‘죽막동 제사 유적’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다양한 신앙과 제사가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여에는 정월에 천제를 지내면서 며칠 동안 음식을 먹고 노래와 춤을 추는 영고(迎鼓)가, 고구려에는 10월에 시조인 주몽(朱蒙)의 모신(母神)인 수신(隧神)에게 제사를 지내는 동맹(東盟)이라는 국중 대회가, 예(濊)에는 고구려와 같이 10월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술을 마시며 가무를 즐기는 무천(舞天)이, 그리고 마한에는 5월과 10월에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며칠 동안 음식을 먹고 춤을 추는 계절제가 있었다. 그리고 삼국의 국가 제사가 역사 기록으로 남아 있다. 부안 죽막동 유적은 역사 기록으로 전해지지는 않았지만, 동아시아의 국제 해양 교류 속에서 공유된 국제적 성격의 제사 유적지로 활용되었다.
[위치]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죽막동의 해안가에 부안 죽막동 유적이 있다. 서해상으로 돌출된 변산반도의 서쪽 끝 해안 절벽에는 당굴(堂窟) 또는 용굴(龍窟)이라는 해식 동굴과 수성당(水城堂)이 자리하고 있는데, 제사 유적지는 수성당의 뒤쪽에 해당한다.
[형태]
부안 죽막동 유적은 해안 절벽의 끝자락에 대략 20×30m 범위를 이루며 100㎡ 정도에서 파쇄된 토기 편과 금속 유물 등이 집중적으로 확인되었다. 건물 터나 제사 관련 구조물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노천에서 제사를 지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의례]
부안 죽막동 유적은 토기를 중심으로 하는 노천 제사가 특징이다. 절벽 위의 평탄면 위에 각종 토기를 제기로 사용하여 해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 제사 대상이 해신인 것은 첫째 제장의 입지가 해안가 절벽이라는 점, 둘째 바다를 통한 외국과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중국 도자기, 일본 석제 모조품 등이 출토되었다는 점, 셋째 해로상의 요충지이며 어로 활동에도 유리한 곳으로 뱃길 안전을 위한 기원의 장소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안 죽막동 유적은 크게 4단계의 변천 단계로 설명된다. 1단계는 3~4세기에 재지 세력이 항해와 어로의 안전을 위해 납작바닥 항아리 등 토기를 중심으로 행해졌던 제사이다. 2단계는 다양한 항아리, 그릇 받침, 말 모양 토우, 석제 모조품, 무기류 등 국제적 성격의 유물들로 구성되며, 백제를 비롯한 다양한 세력이 제사의 주체로 참여했던 5~6세기의 제사이다. 3단계는 재지 세력이 노천 제사를 지냈던 시기로서 8~10세기에 해당하며, 제사의 양상은 1단계와 유사하다. 4단계는 청자, 백자, 말 모양 도용 등이 제기로 사용되며, 고려 시대~조선 시대에 행해졌던 제사이다.
[현황]
부안 죽막동 유적의 제사는 출토 유물을 통해 볼 때 5~6세기에 가장 성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시작과 끝은 분명하게 알 수 없지만, 대략 3~7세기 사이에 제장으로 널리 사용되다가 조선 시대까지 명맥을 유지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출토 유물은 토기류, 금속류, 석제 모조품류로 대별할 수 있다. 토기류는 짧은 목 항아리, 긴 목 항아리, 그릇 받침, 굽다리 접시 등이 대량으로 나왔고, 중심 연대는 5~6세기에 해당한다. 금속 유물은 마구류, 거울류, 무기류로 대별되며, 중심 연대는 5~6세기이다. 모조품은 토제와 석제로 구분되며 칼, 거울, 구멍 있는 원판, 매미 모양 모조품, 말 등 200여 점에 해당한다. 특히 석제 모조품은 일본 오키노시마[沖島] 제사 유적에서 출토된 석제 모조품과 동일하거나 매우 흡사한 것으로, 신에게 바치는 공헌물의 성격을 강하게 보여주는 증거로 평가된다. 이외에 중국 도자기도 확인되었다.
[의의와 평가]
부안 죽막동 유적은 해안 절벽을 배경으로 백제, 가야,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해상 교류와 관련한 뱃길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마련된 우리나라 최초로 노천 해양 제사의 발굴 유적지이다. 백제 시대 이전 시기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해양 제사의 변천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 제사 유적지으로서의 역사성과 진정성을 갖는다. 특히 변산반도 앞바다를 수호하는 개양할미와 관련한 전설뿐만 아니라 풍어와 안녕을 기원하는 용왕제가 매년 정월에 열리고 있어 역사·문화 콘텐츠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