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1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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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長信里陽地堂山祭 |
이칭/별칭 | 촌제,바지락제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장신리 양지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상훈 |
중단 시기/일시 | 1990년대 무렵 - 장신리 양지 당산제 중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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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 장소 | 당산 -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장신리 양지마을 |
성격 | 민간 신앙|마을 제사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정월 초하룻날부터 초사흗날 사이의 좋은 날 |
신당/신체 | 홰나무[현재 고사상태] |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장신리 양지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장신리 양지 당산제 는 음력 정월 초하룻날부터 초사흗날 사이의 좋은 날에 장신리 양지마을 당산에서 당산 할머니를 모시고 마을 사람들의 무병뿐만 아니라 특히 바지락을 비롯한 어업이 잘되기를 빌며 지내는 마을 공동의 제사이다.
부안 지역에서 행해지는 당산제는 일반적으로 정월 초에서 보름날에 행하여지며, 제주는 종교적인 의미로 깨끗한 사람을 선정한다. 초상집에도 가지 않고 비린 것과 개고기를 먹지 않은 사람을 의미한다. 보통 제관, 축관, 집사 등을 선정한다. 제주는 보통 남자로 선정하는데, 제물은 주당산과 따로 준비한다. 제물은 돼지머리를 비롯하여 삼색실과, 주(酒), 포(脯), 떡 등이 준비된다. 비용은 일반적으로 마을 재산이나 공동으로 갹출한 것으로 충당한다. 제는 진설, 재배, 초헌, 축, 아헌, 종헌, 소지, 음복 순으로 유교식 절차로 진행되며, 제가 끝나면 함께 음복하고 마을의 대소사를 논의한다.
[연원 및 변천]
부안군 하서면 장신리 양지마을은 계화도 간척 사업 이후 계화도에 편입되었다가, 다시 하서면으로 편입되었다. 양지마을에서는 당산제를 ‘촌제’, ‘반지락제’라고 부른다. 마을 가운데에 있는 홰나무가 할머니 당산이었으며, 30년 전에 당산나무가 말라죽은 이후에 당산제도 중단되었다.
[신당/신체의 형태]
양지마을 당산은 할머니 당산으로 홰나무이다. 현재 고사한 상태이다. 할아버지 당산은 양지마을 할머니 당산과 마주 보이는 행안면 염소마을 당산이라고 한다. 양지마을 할머니 당산은 기름이 유출되어 말라죽었다고 한다.
[절차]
장신리 양지 당산제 는 음력 정월 초하룻날부터 초사흗날 사이에 좋은 날을 받아서 지냈다. 음력 동짓달에 마을 회의를 소집해서 한 해를 결산하고 제관인 ‘화주’를 결정했다. 제관은 생기복덕이 맞는 사람을 선정했다. 제관에 대한 금기가 아주 철저했다. 대소변을 할 때마다 목욕재계는 물론이고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이 금기는 당산제 당일까지 반드시 지켜야 했다. 비용은 집집마다 쌀이나 보리로 추렴했다. 비용이 남으면 마을 공동 자금으로 사용했다. 마을 입구와 제관 집 대문에 금줄을 쳤다. 제물은 소머리와 삼실과, 나물, 생선류가 준비되었다. 제는 마을 사람들이 풍물패를 앞세우고 마을을 한 바퀴 돌면서 제장을 정화한다. 당산제는 강신, 참신, 초헌, 독축, 아헌, 종헌, 소지 순으로 유교적 절차에 의해 진행하였다. 소지는 마을 대표가 올린 다음 개인별로 올리면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다.
[축문]
당산제의 축문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소지를 올리면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다. 특히 바지락을 비롯한 어업이 잘되기를 기원했다.
[부대 행사]
장신리 양지 당산제 를 마치면 풍물놀이를 하면서 음복하고 뒤풀이를 하였다. 다음날 당산제 결산을 하고, 일 년 동안 마을에 필요한 사업을 논의한 후 한바탕 즐겁게 놀았다.
[현황]
부안군 하서면 장신리의 양지마을에서는 음력 정월 대보름날에 줄다리기가 있었다. 아침에 각자 집에서 볏짚을 가져와 줄을 꼬았다. 줄이 완성되면 줄다리기를 하였다. 남녀 편으로 나누어 줄다리기를 하였는데, 여자 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하여 여자 편이 승리하도록 했다. 줄다리기를 한 다음 줄은 당산나무에 감는다. 흔히 이를 ‘당산 옷 입히기’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