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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1108
한자 堰毒里薪池堂山祭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언독리 신지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상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단 시기/일시 1987년 무렵 - 당산나무가 고사하여 언독리 신지 당산제 중단
재개 시기/일시 1993년 2월 1일연표보기 - 언독리 신지 당산제 장승 조성 후에 재개
의례 장소 장승 -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언독리 신지마을지도보기
성격 민간 신앙|마을 제사
의례 시기/일시 음력 정월 대보름날 초저녁
신당/신체 마을 동편에 있는 논에 있는 장승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언독리 신지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언독리 신지 당산제 는 음력 정월 대보름날 초저녁에 당산 할머니에게 마을의 안과태평과 번성, 그리고 풍농을 빌면서 지내는 마을 공동의 제사이다.

부안 지역의 당산제는 일반적으로 정월 초에서 보름날에 행하여지며, 제주는 종교적인 의미로 깨끗한 사람을 선정한다. 초상집에도 가지 않고 비린 것과 개고기를 먹지 않은 사람을 의미한다. 보통 제관, 축관, 집사 등을 선정한다. 제주는 보통 남자로 선정하는데 제물은 주당산과 따로 준비한다. 제물은 돼지머리를 비롯하여 삼색실과, 주(酒), 포(脯), 떡 등이 준비된다. 비용은 일반적으로 마을 재산이나 공동으로 거출한 것으로 충당한다. 제는 진설, 재배, 초헌, 축, 아헌, 종헌, 소지, 음복 순으로 유교식 절차로 진행되며, 제가 끝나면 함께 음복하고 마을의 대소사를 논의한다.

[연원 및 변천]

부안군 하서면 언독리신지마을은 순우리말로 ‘섶못’ 마을이라고 한다. 신지마을에서는 아카시아와 포플러 등으로 구성된 방풍림이 당산 숲이었다. 이중 큰 아카시아를 당산나무로 모셨다. 그런데 1987년 무렵 당산나무 주변을 개간한 이후 당산나무가 고사하여 당산제도 폐지되었다. 이후 마을 앞의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나거나 객지에서 젊은 사람들이 죽는 등 좋지 않은 일들이 계속 일어나자 마을 사람들이 서로 의논하여 당산 할머니를 복원하기로 하였다. 1993년 2월 1일 장승을 조성한 후에 다시 당산제를 모시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당산은 신지마을 동편 약 100m 정도 떨어진 논 가장자리에 있다. 신지마을 당산은 당산 할머니[할머니 당산]라고 부른다. 화강암으로 조성된 당산 할머니의 크기는 높이 190㎝, 몸 둘레 135㎝이며, 얼굴의 길이는 57㎝, 폭이 35㎝이다. 신지마을 장승의 얼굴 모습은 인자한 할머니 형상이나 두 눈을 위로 치켜뜨고, 입은 반달처럼 미소를 짓게 조성하였다. 웃으면서도 이를 드러나게 하여 무섭게 표현하고 있다. 특별한 명문은 없다.

[절차]

언독리 신지 당산제 는 음력 정월 대보름날 초저녁에 모신다. 만약 부정이 생기면 이월 초하룻날로 연기하였다. 제관은 생기복덕에 맞추어 깨끗한 사람으로 선정하여 모신다. 비용은 집집이 추렴하여 충당하였다. 제물은 돼지머리를 비롯하여 삼실과, 포, 나무, 밥, 국 등이 준비된다. 당산제를 모시는 날에 모든 집에서 짚을 거둬 보통 직경 20㎝, 길이 30m 정도의 동아줄을 준비한다. 줄이 완성되면 ‘마을 돌기’를 한 후에 ‘줄다리기’를 한다. 남녀 편으로 이루지는 줄다리기는 여자 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하여 여자 편이 이기게 한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당산 할머니 옷 입히기’를 하여 동아줄을 장승 신체에 감는다. 이때 ‘머리 얹기’도 한다. ‘당산 옷 입히기’가 끝나면 당산제를 모신다. 당산제는 진설, 재배, 초헌, 축, 아헌, 종헌, 소지, 음복 순으로 유교식 절차로 모신다.

[축문]

언독리 신지 당산제 의 축문 내용은 마을의 번영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소지 축원을 할 때 마을 공동의 축원인 안과태평과 풍농, 그리고 마을의 번성을 빈다.

[부대 행사]

부안군 하서면 언독리 신지마을에서는 당산제가 끝난 후 음복을 하고 한바탕 풍물굿을 치며 신나게 논다.

[현황]

언독리 신지 당산제 는 당산나무가 고사한 후에 폐지되었으나,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한 후 마을 어른의 현몽에 당산 할머니가 나타나자 마을 회의에서 논의 후에 장승을 세워 다시금 당산제가 부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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