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10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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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昌北里堂山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창북리 원창마을|창북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상훈 |
의례 장소 | 돌 짐대 -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창북리 원창북마을|창북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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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민간 신앙|마을 제사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섣달 그믐날 밤 |
신당/신체 | 돌 짐대|당산나무 |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창북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창북리 당산제 는 창북리 원창북·창북 마을에서 매년 음력 섣달 그믐날 밤에 중앙 당산[당산 할아버지, 석조 신간]에게 마을의 무사태평과 풍농·풍어를 빌며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창북리 경로당 옆에 있는 중앙 당산은 석조 당간 위에 화강암으로 만든 오리 모양의 새가 얹혀 있는 형태의 마을 공동체 신앙물이다.
보통 짐대는 가늘고 긴 나무나 돌 윗부분에 새를 한두 마리 올려놓고 단독으로 세우거나, 장승과 함께 마을 입구나 신성한 장소에 세워 액운을 방지하고 마을을 수호하는 신으로 신앙화된 민속 신앙물이다. 짐대는 진대, 거오기, 수살막이대, 철통, 솟대, 솔대, 별신대, 영동대, 화줏대, 거릿대, 오릿대 등의 명칭으로도 전해진다. 짐대는 일반적으로 마을 액막이의 목적을 위해 세워지거나, 마을의 행주형 지세를 보완하기 위하여 세워지거나, 급제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우기도 한다.
[연원 및 변천]
부안군 계화면 창북리 원창북마을과, 창북마을은 본래 한 마을이었다. 원창북마을은 돌 짐대 당산이고 창북마을 당산은 당산나무이다. 원래 원창북마을 당산은 중앙의 짐대와 동서남북 4개의 석간주(石竿柱)로 된 ‘오방진’이었다고 한다. 해변에 있는 ‘들먹’, ‘하나지’, ‘질라두리’ 등의 3개 촌이 침수되자 현재 위치에 마을을 옮기면서 터를 누르기 위해 이것을 설치하였다고 한다. 면 소재지가 확장되면서 당산이 대부분 없어지고 현재는 원창북마을의 중앙 당산을 당산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창북마을에는 팽나무로 된 당산나무가 있다. 이를 당산 할머니라 부른다. 당산 할머니는 1959년 바람에 쓰려져 다시 심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부안군 계화면 창북리의 원창북마을 당산인 돌 짐대는 화강암 돌기둥을 2단으로 세웠다. 돌기둥 위에는 간결하게 조각하여 만든 오리가 올려져 있다. 가운데 부분에는 곡식을 달아매 놓고 있다. 돌기둥 크기는 높이 275㎝, 너비 30㎝, 폭 25㎝ 정도 된다. 돌기둥 위 오리 형태 길이가 50㎝ 정도 된다. 돌기둥 양쪽 바닥에는 자연석이 놓여 있는데 10~13개 정도 되는 성혈이 있다. 창북마을 당산은 당산나무로 당산 할머니라 칭한다.
[절차]
창북리 당산제 는 음력 섣달 그믐날 밤에 모신다. 제관은 마을 회의에서 선출하며 ‘유사’라고 한다. 덕망 있고 깨끗한 사람으로 선출한다. 음식까지 장만한다. 비용은 마을 당산 답에서 나온 것으로 충당한다. 당산제가 있기 전에 마을 입구는 물론이고 유사 집에 금줄[인줄]을 쳐서 부정을 막았다. 제물은 돼지머리를 비롯하여 삼실과, 시루떡, 조기 등을 준비한다. 전에는 돼지머리 대신에 소머리를 준비하였다고 한다. 중앙 당산, 즉 할아버지 당산 중간에 한지 주머니가 있는데 여기에 밤, 대추, 곶감 등을 넣어 묶어 둔다. 제는 무당의 축원 고사굿으로 진행되었다.
[축문]
창북리 당산제 의 축문은 따로 없고, 무당의 축원으로 이루어졌다.
[부대 행사]
당산제가 끝나면 횃불을 들고 오방 돌기를 하고, 집집마다 마당밟기를 하면서 굿을 쳤다고 한다. 다음날, 즉 정월 초하룻날에는 마을 사람들이 동·서로 편을 나누어 줄다리기를 하고 당산 할아버지 신체인 돌 짐대에 줄을 감아 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중단되었다.
[현황]
창북리 중앙 당산은 부안 일대의 돌 짐대 중의 하나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돌 짐대는 2단으로 되어 있고, 독특하게 중앙에 한지 주머니를 매달아 놓고 삼실과를 넣어 둔다. 그리고 중앙 당산 양쪽 바닥의 자연석에 성혈이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