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10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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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巫俗信仰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상훈 |
[정의]
전라북도 부안 지역에서 행하는 당골을 매개로 한 모든 신앙.
[개설]
무속 신앙 은 무당을 주축으로 하여 민간에서 전승되는 신앙이다. 민간 신앙 중 가장 체계적인 구조로 되어 있다. 종교적 지도자로서의 무당이 종교의식을 집행하며, 종교의식에 필요한 구비 경전으로서의 무가가 있다. 무속 신앙은 오늘날에도 살아있는 종교로서 민간에 뿌리를 두고 있는 대표적인 신앙이다.
제의 규모에 따라 ‘굿’과 ‘비손’으로 구분된다. 굿은 여러 명의 무(巫)와 반주를 전문으로 하는 잽이가 합동으로 가무와 실연을 위주로 제의하는 것이고, 비손은 한 사람의 무당이 축원을 위주로 하는 약식 제의이다. 굿은 가무를 중심으로 서서 제의를 진행하며 비손은 앉은 채로 무당이 축원 중심의 제의를 진행 시킨다.
제의 장소는 제의를 통해 무당이 신을 만나는 장소로 신성한 장소이다. 즉 제장은 신이 나타날 수 있는 성스러운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따라서 신당은 성소로서 신체가 봉안되거나 신수가 있다. 무당 제의 장소는 무당 개인의 신단이나 마을 신당, 그리고 민가의 신단 등에서 이루어진다.
제의 과정은 청신 과정, 가무 오신 과정, 신탁 축원 과정, 송신 과정 등으로 구성된다. 청신 과정은 굿에 해당하는 신을 정중히 굿에 청하는 과정이다. 가무 오신 과정은 청한 신을 가무로 즐겁게 해주는 과정이다. 신탁 축원 과정은 초청된 신이 무당에서 공수로 신의 뜻을 전하고 소원을 비는 과정이다. 끝으로 송신 과정은 굿에 초청된 신을 돌려보내는 과정이다.
[부안군의 무속 신앙]
부안 지역은 전통적으로 세습무 집단의 활동이 두드러진 곳이었다. 부안 지역에서 활동하였던 세습무들은 대부분 혼인망으로 연결된 거대한 무계조직을 형성하고 있었다. 즉 섬 지역인 위도 지역에서는 식도 염씨 무계, 진리 최씨 무계, 치도리 장씨 무계, 대리 신씨 무계가 서로 친인척 관계로 얽혀 있다.
단골판은 부부 단위로 활동하는 무업권역이었기 때문에 세습무 자식들이 성장하여 혼인할 때는 경제적 수익을 위해 다른 단골판을 사서 분가해 나가야만 했는데 세습무의 후손들이 사들인 단골판은 부모의 단골판과 연쇄 고리로 얽혀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했다고 할 수 있다. 부안 지역은 산·평야·바다가 골고루 조화를 이루고 있는 지역이지만 황금어장으로 유명했던 해안·도서 지역은 여러 곳에 ‘파시’ 즉 바다의 시장이 형성될 정도로 어업이 매우 활발한 곳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줄포·치도리·진리 등에 파시가 형성되었는데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이곳에서는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조기 생산이 많았다고 한다. 어업이 활발했던 부안의 해안·도서 지역에서는 대부분 바닷가 근처의 산 정상에 당집이 있었는데 이곳 당제는 오랜 세월 동안 매우 활발하게 전승됐다. 당집에 모셔진 신격은 당할머니·마누라·부인·애기씨 등 대부분 여신이었다. 이러한 여신들은 부안의 해안·도서 지역 해신(海神)이면서도 어민들의 수호신으로 작용하였다. 따라서 어민들은 출어하기 전인 정초에 해마다 당제·용왕제·뱃고사 등의 제사를 지내면서 해신에게 자신들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해 왔다. 이러한 제의는 대부분 마을 단골판에 거주했던 세습무들이 주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세습무 집단은 마을 공동체굿을 주도적으로 수행해 온 무업 담당층이라 할 수 있다.
일제에 의한 당집 파괴, 6·25전쟁, 1960년대 시행된 미신타파 운동, 서해안 일대의 간척사업 등으로 인하여 부안의 해안·도서 지역의 당집은 대부분 소실되어 버렸고 당제 또한 약화되거나 거의 중단되어 버린 상태이다. 현재까지 당집이 있는 곳은 격포 죽막동의 수성당과 위도 지역의 식도·진리·치도리·대리 등의 당집뿐이다. 그런데 무당의 주관으로 열리는 당제는 격포 죽막동의 수성당제와 위도 대리 마을 당제인데 격포 수성당제는 세습무에 의해 연행되는 당제가 아니라 외지에서 초빙된 강신무에 의해 연행되고 있다. 세습무는 일반적으로 강신무처럼 신의 비범함을 보여주는 묘기나 공수에 의존하지 않고 굿을 행하기 때문에 세습무 굿에는 강신무 굿과는 다른 예술적인 표현 기교들이 많이 발달하여 있다. 특히 이들이 보유한 무가에는 우리 민족 문화의 정체성을 드러내 주는 많은 신화가 내재하여 있다. 부안 지역에서는 세습무 집단의 활동이 매우 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습무 굿의 전통은 거의 인멸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25전쟁 전까지만 해도 남자 무당 즉 재인들이 굿판을 지키면서 국악 예능 활동을 펼쳐왔으나 예능인들이 우대받는 최근에 이르러서는 재인들이 굿판을 벌이고 국악 분야에만 종사함으로써 굿판은 급속도로 몰락하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