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10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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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老休齋 |
이칭/별칭 | 부안 노휴재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서림공원길 4[동중리 302-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남해경 |
건립 시기/일시 | 1738년 - 남영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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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816년 - 남영재 부안군 부안읍 서림공원길 4[동중리 302-1번지]로 이전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54년 - 남영재 중수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854년 - 남영재에서 운정으로 개칭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869년 - 운정에서 노휴재로 개칭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30년 - 노휴재 개축 |
현 소재지 | 노휴재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서림공원길 4[동중리 302-1] |
원소재지 | 남영재 - 전라북도 부안군 |
성격 | 전통 건물|경로당 |
양식 | 홑처마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4칸 |
측면 칸수 | 3칸 |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건물.
[위치]
노휴재(老休齋)는 부안군 부안읍 서림공원길 4[동중리 302-1번지]에 있다. 부안군청 우측, 서림 공원으로 가는 작은 사거리 오른쪽에 위치한다.
[변천]
1736년(영조 12)에 발의하여 1738년(영조 14)에 당시 부안 지역에서 명망이 있는 노인 19명에 의해 창건되었다. 향리의 중심 역할을 하였던 영월 신씨(寧越辛氏)와 진주 김씨(晉州金氏) 19명이 모여 향당의 미풍 순화를 권장하고, 불의를 멀리하며, 구휼을 목적으로 향리의 정서 함양 및 향도로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기 위하여 조직한 남영계(南英契)가 노휴재의 모태가 되었는데, 이때 명칭인 ‘남영계’를 따라 ‘남영재(南英齋)’라 하였다고 한다. 1816년(순조 16) 신경조(辛景祚)에 의해 객관의 동쪽인 현 위치로 이축하였다. 1854년(철종 5)에 건물이 낡고 불편하여 중수한 다음 ‘운정(雲亭)’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후 1869년(고종 6)에 ‘노휴재’로 개칭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930년에 다시 개축한 것이다.
[형태]
대문을 들어서면 중앙에 노휴재가 위치하고 있고, 좌측에 부속사가 위치하고 있다. 노휴재는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전면 1칸은 마루로 구성되어 있고, 후면 2칸은 방과 대청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청은 공용 공간으로 주로 여기에서 모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1단의 외벌대 기단 위에 가공한 화강암 주초를 놓고 두리기둥을 세운 다음, 창방과 결구하였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현재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며, 부분적으로 변형이 이루어지기는 하였지만 전체적인 형태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건물 안에는 노휴재의 역사와 관련된 사진과 주련(柱聯)이 걸려 있다. 주변의 조적조 및 콘크리트 부속사와 화장실 등은 최근에 생활의 필요에 의해서 증축되었다.
[현황]
현재 본채가 노휴재로 사용되고 있다. 본채 좌측에는 최근에 건축한 관리사 형태의 부속사가 있고, 우측에는 벽돌조와 시멘트 블록조의 창고 용도의 부속사가 있다. 노휴재는 지금도 문중의 모임 장소로 활용되고 있으며, 부속사에 관리인이 거주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노휴재는 부안군에서 가장 오래된 향중의 모임 장소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역사적 측면에서 문화재적 가치는 있으나, 그동안 여러 번 이전하고 중수하여 장소성과 함께 뚜렷한 건축적 특징을 보여 주고 있지 못한 점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