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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1048
한자 七山漁場
영어공식명칭 Chilsan Fishing Grounds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지명/시설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성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칠산 어장 -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지도보기
성격 어장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앞바다를 포함하고 있는 칠산 바다 어장.

[개설]

칠산 어장은 조기잡이의 황금 어장을 상징하는 해역인 칠산 바다의 어장을 말한다. 칠산 바다는 아래로 전라남도 영광군 안마도(鞍馬島) 인근에서부터 송이도(松耳島), 낙월도, 칠산도와 위로는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과 군산시 옥도면 비안도(飛雁島) 인근에 이르는 해역이다. 동중국해(東中國海)에서 서해로 올라오는 회유어종인 조기 어군이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도(黑山島) 및 홍도(紅島) 어장을 거쳐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蝟島) 앞바다인 칠산 어장에 이르러 산란을 하고 연평도(延坪島) 어장으로 올라간다. 칠산 바다가 ‘칠산 어장’으로 불리는 까닭은 칠산 바다에서 조기 황금 어장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조기잡이 전성기 때의 칠산 어장에서는 위도 파시(蝟島波市)를 비롯해 곳곳에 크고 작은 파시가 성행하였다.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대리 마을의 어로 민요인 「배치기 소리」에는 “칠산 바다에 들어온 조기 우리 배 사공님 애태운다.”, “돈 실러 가자 돈 실러 가자 칠산 바다로 돈 실러 가잔다.”, “칠산 바다에 들오는 조기 우리 배 마장에 다 잡어 실었다.” 등의 사설이 전승되고 있다. 칠산 바다 어장이 조기잡이의 중심 어장임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조기를 소금 절임해서 말린 굴비는 칠산 어장에서 어획·생산되는 대표적인 건어물이다.

[변천]

서해의 ‘칠산 조기 어장’은 동해의 명태 어장과 더불어 우리나라 최대 어장으로 불리었다. 칠산 어장은 자연 생태 환경면에서 조기와 같은 회유성 어종의 산란지로 최적지이다. 칠산 어장에서 조기잡이가 본격화된 시기는 조선 후기부터라고 한다. 조기는 유교 문화권의 상징인 제사상에 오르게 되면서 바다 생선을 대표하게 되었다. 조기는 군집을 이루며 이동하기 때문에 대량 어획이 가능하다. 일제 강점기에 유자망 어선(流刺網漁船)과 소위 중선배로 불린 안강망 어선(鮟鱇網漁船) 등 새로운 조기잡이 어선, 어로 기술, 어구가 도입되면서 조기의 대량 포획이 보다 용이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칠산 어장의 해안가에서는 천일염 생산 기술의 도입과 함께 염전의 소금 생산량이 풍부해지고 기후와 일조량도 적당하여 조기의 절임과 건장이 발달하며 장기간 보관도 가능해졌다.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포와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 부근의 칠산 어장은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도 부근의 연평 어장과 함께 가장 대표적인 조기 어장이었다. 칠산 어장에서 형성된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 파시와 칠산 파시, 그리고 연평 어장에서 형성된 연평 파시는 우리나라 최대의 조기 파시로 유명하였다. 칠산 어장의 조기잡이는 1970년대 이후로는 쇠퇴하였다. 반면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포를 중심으로 발달한 굴비 가공업은 ‘영광 굴비’라는 이름으로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현황]

광복 이후 칠산 어장의 조기 어군은 점차 감소세를 보이다가, 1960년대 이후로 급격히 감소했고, 1970년대 이후로는 완전히 고갈되고 말았다. 한정된 어족 자원을 남획한 결과였다. 게다가 칠산 어장보다 훨씬 남쪽인 흑산도[가거도] 일대에서도 조기잡이가 성행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현대 첨단 장비와 어구를 장착한 대형 어선들이 동면을 마치고 산란지인 칠산 어장으로 북상하는 조기 떼의 길목을 지키고 진입 전에 포획해 버리기 때문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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