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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871
한자 昌北敎會
영어공식명칭 Changbuk Church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창북안길 7-8[창북리 436-3]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천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72년연표보기 - 창북교회 설립
이전 시기/일시 1973년 - 창북교회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 봉황리에서 계화면 창북리로 이전
이전 시기/일시 1979년 - 창북교회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창북리에서 계화면 창북안길 7-8[창북리 436-3]로 이전
최초 설립지 창북교회 -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 봉황리지도보기
주소 변경 이력 창북교회 -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창북리
현 소재지 창북교회 -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창북안길 7-8[창북리 436-3]지도보기
성격 교회
전화 063-583-7633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창북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소속 교회.

[설립 목적]

창북교회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창북리 일원 지역 주민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복음화를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창북교회는 1972년에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 봉황리에 살던 신영풍 집사[현 장로] 집에서 시작되었다. 신영풍 집사는 부인인 김순남 집사[현 권사]를 자전거에 태워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창북리에 오게 되었다. 그리고 계화 간척 사업으로 인한 주택 공사를 위해 대지 정리가 한창 진행 중인 광경을 보고 미래가 바라보이는 이곳에 땅을 매입하여 가계를 짓고 이사해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고심 끝에 결정을 내린 부부는 조개껍질이 수북이 쌓인 약 661㎡ 규모의 땅을 발견하고 여기에다 집을 짓고 예배 보면서 교회를 개척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집을 짓게 되었다.

이어 1972년 11월 6일 신영풍 집사의 집에서 신영풍 집사, 김순남 집사, 이광우 집사, 정재화 집사, 신선녀 집사, 오금례 집사, 김점례 학생[당시 여고생] 등 7명의 성도가 9.91㎡ 규모 남짓한 좁은 안방에서 예배를 보면서 창북교회가 출발하게 되었다. 창북교회는 빠르게 성장했고, 방안은 곧 30여 명의 성도로 가득 차게 되었다. 예배 장소가 좁아 성전 건축의 시급함을 동감한 성도들이 성전 터를 물색했고, 넓은 들이 한눈에 보이는 좋은 숲이 우거진 곳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땅은 국유지로서 창북 마을 대동회에서 관리하고 있는 땅으로, 조상대대로 내려오면서 해마다 명절이면 마을 제사를 지내는 ‘당산’이었다. 온 마을 사람들이 동네 망한다며 펄쩍뛰며 반대했다.

그러나 굽히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씩 끈질기게 마을 유지들을 설득하기 시작하여 결국 긍정적인 대답을 듣게 되었고, “차후에 마을 회관을 건립 할 땅이니 회관 지을 땅을 대신 마련해 달라”는 요구 조건까지 제시 받게 되었다. 이에 신영풍 집사 소유 부지 386.77㎡와 교환하여 1973년 3월에 블록으로 된 예배당을 신축하여 예배를 보게 되었다. 교회 명칭은 지역 명칭을 따라 ‘창북교회’로 명명했고, 초대 교역자로 조금훈 전도사가 부임하였다. 이후 최동호 목사, 오청길 목사, 신수길 목사, 임득춘 목사가 사역하며 교회의 기틀을 마련했고, 2003년부터 6대 임종주 목사가 부임하였다.

이후 창북교회가 점점 부흥하여 다시 큰 성전의 건축이 필요하게 되자, 김분이 권사[김용일 목사 모친]의 부군 김남수 성도가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창북안길 7-8[창북리 436-3] 현 교회 부지 350.41㎡를 새로운 교회 부지로 헌납했다. 김제 명량교회 전송덕 권사도 우연히 마을 앞을 지나가다 교회를 찾아 1000만 원이라는 거금을 헌금해 주었다. 이어 1978년 5월 23일에 기공 예배를 보고, 1979년 4월 15일에 현 교회당[예배실 198.35㎡, 연건평 287.60㎡]을 신축하여 입당 예배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2011년에는 지역 사회를 섬기는 교회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 연면적 396.69㎡[1층 231.41㎡, 2층 165.28㎡]의 교육관을 신축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2003년 6대 교역자로 부임한 임종주 목사는 농촌에 뜻을 두고 대학에서 농학을 전공했고, 장신대 신학대학원에 진학해 농촌 목회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농촌 목회를 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첫 부임지인 리(理) 단위에 있는 부안동전교회에서 15년 동안 시무하며 젊은 목회자들과 연대하여 농촌 목회 관련 각종 세미나와 함께 농촌 목회의 성공을 위한 활동에 주력했다. 이후 창북교회에 부임하여 ‘가족 같은 교회, 지역을 섬기는 교회’라는 목회 슬로건[목회 철학]을 내걸고, 교회는 지역을 섬기며 지역 사회를 품고 가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지역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목회 철학을 굳건히 했다.

그리고 농촌 목회는 “공허한 마을을 교회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라는 농촌 목회의 선구자 민정웅 목사의 교훈처럼 공허해져 가는 농촌을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천국의 마을로 변화시키는 것임을 알고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여기에는 노인 목회도 포함되어 있어 2006년 3월 초에 창북 노인 대학을 개강했고, 주요 프로그램을 레크리에이션 및 노래, 학장 훈화, 국민 체조, 분반 공부, 특강, 간식 접대, 1년에 1차례씩 어르신 관광, 1년에 4차례 씩 분기별 생일 축하 행사 등으로 편성하여 진행하였다.

또한 노인 복지를 위해 창북 노인 복지 센터를 만들어 정부의 노인 일자리 사업 50명을 배정 받아 2008년 3월부터 실시하였다. 이는 독거노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 가정을 방문하여 집안 정리 정돈[청소해 주기, 간단한 수리], 외부일 봐주기[심부름 해 주기], 건강관리 해 주기[반찬 봉사, 발 마사지], 상담[말벗 되어 주기] 등의 봉사 활동을 하는 사업이다.

농촌 목회에는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복지 서비스도 포함되어 있어, 2008년 1월부터 13년이 넘게 지역 아동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지역 사회 내 결손 가정, 한 부모 가정, 다문화 가정, 맞벌이 부부 가정, 저소득층 가정의 아동들이 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하여 통합적으로 보호하면서 양질의 복지와 교육의 장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성장기에 필요한 영적, 신체적, 정서적 안정은 물론 사회 적응을 위한 특기 개발 및 전인 교육을 통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복지 증진에 기여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다.

2010년부터 매년 3월경에 총동원 전도 주일을 정해 영혼 구원 사역을 실시하며, 전도 대상자의 선정과 함께 전도를 위한 세이레 특별 기도회 등의 전도 프로그램을 통해 매년 10명 이상씩 결신자를 얻어 농촌 교회로서 든든히 서가는 교회로 탈바꿈하고 있다. 그 외에 부활절 때는 지역 사회 15개 회관에 부활절 달걀을 나누면서 부활의 기쁨도 함께 나누고 있으며, 성탄절에는 신년과 맞추어 떡국 재료를 나누며 예수 탄생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있다. 한편 선교 사역으로는 국내 미자립 교회를 돕고, 해외 선교사들에 대한 기관별 선교도 하고 있다.

[현황]

창북교회는 제6대 임종주 목사를 비롯하여 장로 6명[시무 3, 원로 1, 은퇴 2], 안수 집사 15명[시무 7, 은퇴 8], 권사 29명[시무 19, 은퇴 10]등 170여 명의 장년과 45여 명의 주일 학교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다양한 사역의 집중도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13개 위원회와 12개 구역, 남선교회와 2개의 여전도회를 조직·운영하고 있다. 예배 시간은 주일 오전 예배 11시 30분, 오후 찬양 예배 오후 3시, 수요 기도회 오후 7시 30분, 아동부 주일 오후 1시, 중고등부 주일 오후 1시 30분 등이다. 매일 오전 5시에는 새벽 기도회가 있고, 금요일 7시 30분에는 구역 예배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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