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8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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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留節庵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석동길 68-9[연곡리 460]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동희 |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연곡리에 있는 조선 시대 재실.
[개설]
유절암(留節庵)은 조선 시대 전주 최씨(全州崔氏)의 재실이다. 전주 최씨의 입향조 최생명(崔生明)은 최광지(崔匡之)의 아들로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경시전직(京市殿直)을 지냈다. 최생명은 수양 대군(首陽大君)이 왕위를 찬탈하자 계부(季父) 최덕지(崔德之)와 함께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연촌(烟村) 최덕지는 전라남도 영암으로 내려갔고, 최생명은 처향인 부안 옹정(甕井)으로 낙향하여 호를 옹암(甕庵)이라 하였다. 최생명이 한강 가에서 성삼문(成三問) 등과 이별을 나눈 전별시가 『동문선(東文選)』에 실려 있다. 최생명이 죽자 김일손(金馹孫)이 만장을 지었다.
‘유절암’은 절개가 머무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재실이 아니라 암자라고 이름한 것은 당시에 재실을 못 짓게 하는 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재실 대문 겸 누각인 ‘백원루(百源樓)’라는 편액은 ‘효(孝)는 백행지원(百行之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위치]
유절암은 부안군 부안읍 연곡리 석동마을을 감싸고 있는 석동산의 서쪽 기슭에 자리한다. 부안고등학교에서 지방도 제707호선을 타고 부안남초등학교 방향으로 800m 정도 내려가면 좌측 길에 ‘전주 최씨 유절재’ 표지석이 보인다. 표지석이 있는 좌측 길로 들어서 소로를 따라 300m 정도 가면 ‘유절재’ 표지석이 또 나온다[중간에 전주 최씨 세천비와 부안 골프장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짐]. 표지석을 따라 좌측 길로 꺾어 산자락 쪽으로 400m 정도 들어가면 유절암이 나타난다.
[변천]
유절암은 조선 시대에 전주 최씨의 입향조인 최생명을 향사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형태]
재실은 정면 6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2단의 석축 기단 위에 자연석의 활석을 이용하여 주추를 놓고, 그 위에 민흘림기둥을 세웠다. 재실의 중앙에는 ‘유절암’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재실의 앞에는 문루인 백원루가 있다. 백원루는 2층 구조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백원루 전면에는 2기의 효자 정려 현판이 걸려 있다. 오른쪽[서편]은 효자 성균 진사(成均進士) 최필성(崔弼成)의 정려이고, 왼쪽은 효자 성균 생원(成均生員) 최계성(崔繼成)의 정려이다. 문루에는 ‘백원루’ 편액이 걸려 있지 않다. 유절암 앞쪽으로 연못이 있고, 서쪽으로 약 10m 떨어진 곳에 입향조 최생명이 심었다는 수명 300년 정도의 은행나무가 서 있다. 서쪽으로 2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전주 최씨의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동편에는 근래에 신축한 화장실 건물이 있다.
[현황]
소유자 및 관리자는 전주 최씨 종중이다. 유절암에 보관되어 있던 고려 후기 최광지의 홍패(紅牌)는 1389년(창왕 2) 문과에 급제해 받은 것으로 보물 제2062호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유절암은 중랑장공파 부안종회의 종대(宗垈) 역할을 하고 있다. 유절암에 보관되어 있던 최광지 홍패(崔匡之紅牌)는 고려 시대 문서 가운데 ‘고려국왕지인’이 찍힌 유일한 홍패라는 평을 받고 있다. 유절암에는 또 전주 최씨와 부안 김씨(扶安金氏)가 300년에 걸쳐 벌인 산송 관련 문서들이 남아 있다. 이는 조선 사회사를 규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연구와 정리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