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8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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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春園莊 |
영어공식명칭 | ChunWonJang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 선돌로 1235-39[장동리 산6]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대길 |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 장동리에 있는 개항기 재실.
[개설]
춘원장(春園莊)은 영월 신씨(寧越辛氏)의 재실로 동학 농민 혁명(東學農民革命) 당시 줄포(茁浦) 도소[집강소]로 추정된다. 1894년(고종 31) 동학 농민 혁명 때 줄포 지역에 ‘도소’를 설치하여 자치를 실현하였는데, 춘원장이 도소 건물로 추정된다. 그때 상황이 다음과 같이 전한다.
“줄포는 유명한 포구로 인물과 재산이 풍부하고 고부(古阜), 흥덕(興德), 고창(高敞), 무장(茂長)의 4개 군이 서로 접하여 사방에서 적을 맞는 곳이었다. 해당 지역의 인민을 안정시켜 줄 것을 요청하였기 때문에 6월에 나아가니, 각처의 탁란배(濁亂輩)가 그 소문을 듣고 물러가는 것을 보았다. 남녀와 아이 및 노인들이 길을 막고 붙잡았기 때문에 차마 떼어 버리지 못하고 여섯 달 동안 머물렀는데, 그 공덕을 칭송하는 목비(木碑)가 곳곳마다 많이 세워지고 가인(佳人)과 명기(名妓)가 절개를 훼손하지 않았다고 하니, 이것은 천사의 큰 덕이었다.”[『김낙봉 이력(金洛鳳履歷)』]
이로 보아 줄포 지역에 도소가 설치 운영된 사실은 분명하나, 구체적인 장소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춘원장이 위치한 지대가 줄포 중심지보다 높다는 점, 현재의 줄포 중심지까지 바닷물이 들어온 항구였으나 토사로 인해 줄포항이 폐쇄되었다는 점, 그리고 1950년대 6·25 전쟁 당시에도 재실이 공용 시설로 활용되었다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춘원장이 줄포 도소로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위치]
춘원장은 부안군 줄포면 장동리 각동마을에서 약간 외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변천]
「건축물대장」에는 1891년(고종 28)에 사용 승인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상량문은 ‘龍□開國五百三十六年丁卯二月十八日巳時竪二十日寅時上樑□龜’ 즉 1928년으로 되어 있다.
[형태]
약 2m 높이의 담장으로 둘러싸인 정면 4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 건물이다. 재실은 6단의 화강석 막돌 기단 위에 종형의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민흘림기둥을 세웠다. 대문은 삼문의 솟을대문이다. 재실 뒤편에 영월 신씨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현황]
춘원장의 소유자는 영월 신씨 신규호이고, 관리자는 영월 신씨 신주하[91세]이다. 건물의 이름을 나타내는 편액으로 정면에 ‘춘원장(春遠莊)’, 우측면에 ‘봉래헌(蓬萊軒)’, 뒷면에 ‘송은재(松隱齋)’가 걸려 있다. 이로 보아 별장과 학습 공간 및 재실의 기능을 동시에 갖추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송은재’ 현판은 심농(心農) 조기석(趙沂錫)의 글씨이고, ‘봉래헌’은 춘암(春菴)을 호로 하는 이의 글씨이다. 정면에 5개의 편액이 ‘춘원장’ 편액 좌우에 걸려 있는데, 마모되어 판독이 쉽지 않다. ‘백세청풍(百世淸風)’ 등 자연의 아름다움을 적은 편액과 7자구로 된 주련(柱聯)이 전면에 7개, 우측면에 3개, 후면에 7개가 걸려 있다. 건축물과 보존 상태 등은 양호한 편이나 자칫 관리가 부실할 경우 퇴락의 속도가 가속화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춘원장은 건물의 미적 아름다움은 물론 춘원장과 봉래헌, 송은재라는 세 가지 용도로 사용되었다는 점 등을 볼 때 보존의 가치가 높은 건축물이다. 더불어 동학 농민 혁명 당시 줄포 도소로 사용되었다는 점이 확인된다면 역사적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