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702 |
---|---|
한자 | 趙南哲 |
영어공식명칭 | Jo Namcheol |
이칭/별칭 | 걸어 다니는 바둑 법전,송원(松垣) |
분야 | 문화·교육/체육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경회 |
출생 시기/일시 | 1923년 11월 30일 - 조남철 출생 |
---|---|
수학 시기/일시 | 1937년 - 조남철 기티니 미노루 9단 문하생으로 수학 |
수학 시기/일시 | 1941년 - 조남철 일본기원 입단 |
활동 시기/일시 | 1944년 - 조남철 귀국 |
활동 시기/일시 | 1945년 - 조남철 한성기원 설립 |
활동 시기/일시 | 1948년~1950년 - 조남철 명인전 우승 |
활동 시기/일시 | 1951년 - 조남철 국기전 우승, 명인전 우승 |
활동 시기/일시 | 1952년~1953년 - 조남철 명인전 우승 |
활동 시기/일시 | 1954년 - 조남철 국기전 우승, 최고위전 우승 |
활동 시기/일시 | 1955년 - 조남철 제왕전 우승, 명인전 우승, 기왕전 우승, 왕위전 우승 |
활동 시기/일시 | 1956년 - 조남철 제왕전 우승 |
활동 시기/일시 | 1957년 - 조남철 국기전 우승, 기왕전 우승 |
활동 시기/일시 | 1959년 - 조남철 국기전 우승 |
활동 시기/일시 | 1962년~1964년 - 조남철 국수전 우승, 최고위전 우승 |
활동 시기/일시 | 1965년~1966년 - 조남철 국수전 준우승, 최고위전 우승 |
활동 시기/일시 | 1968년 - 조남철 최강자전 준우승, 국수전 준우승, 왕좌전 준우승, 명인전 우승 |
활동 시기/일시 | 1969년 - 조남철 왕위전 준우승, 왕좌전 우승 |
활동 시기/일시 | 1970년 - 조남철 패왕전 준우승, 국수전 준우승, 왕위전 준우승, 명인전 우승 |
활동 시기/일시 | 1971년 - 조남철 명인전 준우승 |
활동 시기/일시 | 1972년 - 조남철 왕위전 준우승 |
활동 시기/일시 | 1973년 - 조남철 최강자전 우승 |
활동 시기/일시 | 1974년 - 조남철 명인전 준우승 |
활동 시기/일시 | 1975년 - 조남철 최강자전 준우승 |
활동 시기/일시 | 1989년 - 조남철 은관 문화 훈장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1994년 - 조남철 바둑 문화상 감투상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1998년 - 조남철 제4회 운경상 문화 언론 부문상 수상 |
몰년 시기/일시 | 2006년 7월 2일 - 조남철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6년 7월 4일 - 조남철 금관 문화 훈장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2015년 11월 12일 - 한국 바둑의 개척자 조남철 선생 추모 학술 대회 개최 |
추모 시기/일시 | 2018년 11월 5일 - 조남철 대국수로 추대 |
출생지 | 조남철 출생지 -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 |
거주|이주지 | 조남철 이주지 - 서울특별시 |
학교|수학지 | 기타니 미노루 9단 문하생 - 일본 |
활동지 | 일본기원 - 일본 |
활동지 | 한성기원 - 서울특별시 중구 남산동 |
묘소 | 양평 공원 묘원 -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양동금곡1길 331[삼산리 산55] |
성격 | 바둑 기사 |
성별 | 남 |
본관 | 풍양 |
대표 경력 | 한국기원 명예 이사장|대국수 |
[정의]
전라북도 부안 출신의 바둑 기사.
[개설]
조남철(趙南哲)[1923~2006]은 한국 바둑계의 개척자이며, 한국 바둑을 세계적 반열에 올린 대국수(大國手)이다.
[가계]
본관은 풍양(豊壤), 호는 송원(松垣)이다. 조치훈(趙治勳) 9단은 조카로 같은 집안이다. 한국 최고의 바둑 명가(明家)로 조치훈 9단을 비롯해 조상연 7단, 최규병 9단, 이성재 9단, 최영찬 2단 등 여러 명의 프로 바둑 기사를 배출한 집안이다.
[활동 사항]
조남철은 1923년 11월 30일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에서 태어나, 어릴 적에 서울로 이사하면서 바둑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1937년 15세 때 도일하여 기타니 미노루[木谷實] 문하에서 7년간 수학했고, 1941년에 초단이 되었다. 1944년 일본에서 귀국했고, 이듬해인 1945년에 서울특별시 중구 남산동에 한국기원(韓國棋院)의 전신인 한성기원(漢城棋院)을 설립하였다. 현대 바둑의 보급을 위해 단위 제도를 신설하며 각종 기전(棋戰) 창설을 이끌었고, 국수전은 『동아 일보』와 함께 창설한 국내 최초의 기전이었다.
제1기~제5기 전국 위기 선수권전 5연패, 제1기·제3기 왕좌전 우승, 제1기 최강자전 우승, 제1기~제9기 국수전 9연패, 제1기·제3기 명인전 우승, 제1기~제4기 패왕전 우승, 제1기~제7기 최고위전 7연패 등 통산 30회의 우승을 기록을 가지고 있다. 1983년에 9단으로 승단[특별 승단]했고, 1984년에는 한국기원 명예 이사장에 올랐으며, 1994년 제18기 국기전에서 당시 나이 71세의 최고령으로 본선에 진출하였다. 1997년 명지대학교 바둑 지도학 교수가 되었으며, 2006년 7월 2일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위기 개론』, 『바둑 첫걸음』, 『바둑에 살다』, 『행마의 기초』, 『행마의 급소』, 『조남철 회고록』 등 26권의 저서를 출간하였다. 『위기 개론』을 통해 일본어가 주가 되던 바둑 용어를 한국어로 바꾸어 놓아 ‘걸어 다니는 법전’이라 불렸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양동금곡1길 331[삼산리 산55] 양평 공원 묘원 내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89년 은관 문화 훈장을 받았으며, 2000년 6월 1일 국가 유공자로 지정되었다. 2006년 ‘조남철 영결식’에서 한국기원과 『동아 일보』가 대국수 칭호를 헌정했고, 2006년 7월 4일 정부가 공로를 인정하여 금관 문화 훈장을 추서했다. 2018년 11월 5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1회 바둑의 날 기념식에서 대국수로 추대되었고, 헌정 메달을 받았다. 전라북도 부안군은 조남철 국수의 공헌을 기리기 위해 대규모 야외 바둑 체험 공원을 조성·설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