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6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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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振奭 |
영어공식명칭 | Jeong Jinseok |
이칭/별칭 | 고산(孤山)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 오곡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정재철 |
출생 시기/일시 | 1920년 1월 20일 - 정진석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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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35년 3월 - 정진석 백산보통학교 졸업 |
수학 시기/일시 | 1939년 4월 - 정진석 선린상업학교 전수과 입학 |
수학 시기/일시 | 1942년 4월 - 정진석 일본 교토 입명관 법정학교[야간] 입학 |
수학 시기/일시 | 1942년 9월 - 정진석 일본 동경 호젠상업학교 졸업 |
활동 시기/일시 | 1945년 9월 - 정진석 백산면 청년동맹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46년 9월 - 정진석 군산여자상업학교 교사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947년 3월 - 정진석 군산에서 교사 사퇴 이후 당 특수 조직 세포 지도 |
활동 시기/일시 | 1947년 10월 - 정진석 군 포고령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 유예 2년 선고 받음 |
활동 시기/일시 | 1949년 11월 21일 - 정진석 백산중학교 교감으로 취임 |
활동 시기/일시 | 1950년 8월 - 정진석 부안군당 선전부 강사로 소환 |
활동 시기/일시 | 1950년 10월 - 정진석 변산으로 입산 생활 |
활동 시기/일시 | 1952년 4월 18일 - 정진석 변산 덕성봉 아래에서 경찰에 체포됨 |
활동 시기/일시 | 1952년 6월 - 정진석 남원경찰서에서 석방 출소 |
활동 시기/일시 | 1955년 2월 - 정진석 백산중학교 교사로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961년 2월 - 정진석 백산중학교 교장 취임 |
활동 시기/일시 | 1966년 2월 - 정진석 백산고등학교 설립, 중고 교장 겸임 |
활동 시기/일시 | 1986년 3월 - 정진석 지운 김철수 추모사업회 조직 |
활동 시기/일시 | 1989년 11월 - 정진석 백산학원 법인 이사장 취임 |
활동 시기/일시 | 1991년 9월 - 정진석 민선 초대 전라북도 교육 위원으로 당선 |
몰년 시기/일시 | 2005년 9월 11일 - 정진석 사망 |
출생지 | 정진석 출생지 - 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 임방길 8[오곡리 671] |
거주|이주지 | 정진석 거주지 - 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 덕신리 145 |
학교|수학지 | 백산보통학교 - 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 백산로 306-7[평교리 223] |
학교|수학지 | 선린상업학교 -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97길 33-4[청파동3가 131-2] |
학교|수학지 | 호젠상업학교 - 일본 동경 |
학교|수학지 | 입명관대학 - 일본 교토부 교토시 북구 등지원북정 56-1 |
활동지 | 정진석 활동지 - 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 덕신리 |
묘소 | 정진석 묘소 - 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 평교리 산 12-1 |
성격 | 사회 운동가|교육자 |
성별 | 남 |
본관 | 동래 |
대표 경력 | 백산중·고등학교 교장|백산학원 이사장|전라북도 교육 위원 |
[정의]
전라북도 부안 출신의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교육자.
[개설]
정진석(鄭振奭)[1920~2005]은 일제 강점기에 고학으로 서울과 일본에서 학교를 다녔다. 광복 후에는 좌익 사상운동과 함께 청년동맹에 관여하는 등 사회주의 운동에 나섰다. 6·25 전쟁 때는 변산에 입산하여 유격 활동도 했다. 교육에도 관심이 커서 지역 사람들과 백산중학교를 설립하는 등 지역의 인재 양성을 위해 노력했다. 백산고등학교를 설립하여 교장으로 재임했으며, 민선 1기 전라북도 교육 위원 활동도 하면서 교육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가계]
본관은 동래(東萊), 호는 고산(孤山)이다. 아버지 정익모(鄭益模)와 어머니 유다내[柳達川] 사이의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활동 사항]
정진석은 1920년 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 오곡리 임방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서당을 다녔고 상경해서 서울 선린상업학교를 다녔다.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東京]의 호젠상업학교를 졸업하고 교토[京都] 입명관대학 전문부에 입학했다가, 일제가 대학생들을 지원병으로 끌고 가자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하여 은거했다. 광복 후에는 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 청년동맹에 참여하는 등 친일파 청산과 자주독립 국가 설립에 관심을 가졌고, 군산여자상업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사회주의 운동에 관여하였다. 조선공산주의 청년동맹 부안군지부가 조직되면서 비서 책임을 맡았다. 당시 책임 비서는 김용술(金榕述), 조직은 박인철(朴仁喆)이 맡았다. 백산중학교 설립에도 참여하여 설립 인가와 함께 교감으로 취임했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부안군당 선전부 강사로 소환되었고, 9·28 수복 이후에는 변산에 들어가 백산면당 위원장과 제1블럭책 등을 맡아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남원 수용소를 거쳐 석방된 후 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 백산로 379[오곡리 547-5]의 백산중학교에 복직하였다. 이후 백산중학교 학생들의 학력 신장을 위해 노력했고, 1966년에는 백산고등학교를 설립하여 백산중학교와 백산고등학교 교장을 겸했다.
백산고등학교는 당시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지역 젊은이들에게 진학의 기회를 제공했고, 배구부를 창설하여 1980년대에 전국을 제패하며 전라북도 부안군의 위상을 높이기도 했다. 백산중·고등학교는 전라북도 부안은 물론, 김제와 정읍의 학생들도 선호하는 지역 명문 학교로 성장했다. 1991년에는 민선 초대 전라북도 교육 위원이 되었고, 지운(遲耘) 김철수(金綴洙) 선생 추모사업회 위원장을 맡아 항일 독립운동가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사업을 전개했다. 정진석은 2005년 9월 11일에 사망했다.
[저술 및 작품]
자서전 『옳고 그름을 떠나서』를 남겼다.
[묘소]
묘소는 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 평교리 산 12-1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89년에 정부로부터 황조 근정 훈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