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6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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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丙得 |
영어공식명칭 | Bak Byeongdeuk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용서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임혜영 |
출생 시기/일시 | 1906년 1월 7일 - 박병득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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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32년 - 박병득 「치안 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집행 유예 2년 선고 받음 |
몰년 시기/일시 | 1945년 3월 15일 - 박병득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7년 - 박병득 건국 포장 추서 |
출생지 | 박병득 출생지 -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용서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박병득(朴丙得)[1906~1945]은 1926년 부안청년동맹(扶安靑年同盟)에 가입하며 청년 운동에 참여했고, 노동자들의 권익 옹호를 위해 노력하였다. 1932년 부안노동조합협의회 결성 관련 활동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치안 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집행 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활동 사항]
박병득은 1906년(고종 43) 1월 7일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용서리에서 출생하였다. 1925년 이웃한 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 원천리에서 원천소작동우회가 조직되었다. ‘지주와 소작인 사이에 발생한 문제에 관여해서 해결할 뿐만 아니라 청년 운동과 노동 운동에 노력한다’고 목적을 명시하였다. 당시 전라북도 부안이 청년 운동, 노동 운동 등에 관심이 많은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박병득은 1926년 무렵 부안청년동맹에 가입하며 청년 운동에 참여하는 한편, 노동자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사회주의 연구 단체의 결성을 위해서도 노력하였다. 1931년에는 부안노동조합 부활을 위한 결사의 조직도 도모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932년 백남철(白南哲), 강희석(姜喜錫), 박예동(朴禮棟), 김옥남(金玉南), 임장수(林長壽), 신남근(辛男根) 등과 함께 노동자 권익 보호를 위한 사회주의 연구 및 부안노동조합협의회 결성 관련 활동을 하다가, 전라북도 지방 노동 운동가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에 나선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34년 3월 전주지방법원에서 「치안 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 유예 2년 선고를 받았고, 미결수로 180일간 구류(拘留)되어 옥고를 치렀다. 1945년 3월 15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7년 건국 포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