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6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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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京先 |
영어공식명칭 | I Gyeongse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 당상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임혜영 |
출생 시기/일시 | 1858년 - 이경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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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9년 8월 25일 - 이경선 투옥 |
몰년 시기/일시 | 1911년 8월 31일 - 이경선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6년 - 이경선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부안현 -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 당상리 |
활동지 | 지도군 - 전라남도 지도군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부안 출신의 의병.
[개설]
이경선(李京先)[1858~1911]은 이성화 의진에 가담하여 전라남도 지도군(智島郡)[현 전라남도 신안군] 일대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던 중 체포되어 징역 5년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활동 사항]
이경선은 부안군 하서면 구지산리(九芝山里)[현 부안군 동진면 당상리]에서 태어났다. 1908년(순종 2) 고부[현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에서 의병을 일으킨 이성화(李成化)의 의진(義陣)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이성화 의진은 고부·태인·순창·부안·정읍 등지에서 1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활동하였는데, 주로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통해 세력을 키워 나갔다.
재판 기록에 따르면 이경선은 1909년 7월 15일 최순보(崔順甫), 이성화 등 의병 8명과 함께 전라남도 지도군 상리(上里)[경화도(境火島)]에 도착하여 이도여(李道汝)를 불러 놓고 “우리는 의병인 바 군자금을 제공하라. 만약 불응하면 총살할 것이다.”라고 군자금을 요구하여 20원을 징수하였다. 같은 마을 백 서방[성명 미상]에게도 같은 방법으로 20원을 징수하였다. 7월 17일에는 지도군 위도면(蝟島面)[현 부안군 위도면] 추념리(楸念里)의 이장 송 모를 선창으로 불러 군자금으로 금전 30원을 요구하고 20원을 징수하였다. 같은 날 추념리에서 10여 리 떨어진 태화황리(太和黃里)에 이르러 동장에게서 16원을 징수하였는데 이들은 동장과 이장 등 지방의 유력가나 친일적인 집안을 주로 습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경선은 이렇듯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그 해 8월 25일 징역 5년을 선고받았고, 1911년 8월 31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6년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