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6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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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瑜 |
영어공식명칭 | I Yu |
이칭/별칭 | 덕형(德馨),도곡(桃谷)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통정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선아 |
출생 시기/일시 | 1545년 - 이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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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597년 - 이유 사망 |
출생지 | 함평현 - 전라남도 영광군 대마면 남산리 |
거주|이주지 | 부안현 -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통정리 도화마을 |
활동지 | 부안현 -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
성격 | 의병장 |
성별 | 남 |
[정의]
조선 후기 전라북도 부안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가계]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덕형(德馨), 호는 도곡(桃谷)이다. 전라남도 함평으로 낙향한 영파정(纓波亭) 이안(李岸)의 현손이다. 죽곡(竹谷) 이장영(李長榮)[1521~1599]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숙부 이억영(李億榮)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활동 사항]
이유(李瑜)[1545~1597]는 지금의 전라남도 영광군 대마면 남산리(南山里)에서 태어났다. 처향인 부안 도화동[현 부안군 상서면 통정리 도화마을]으로 이거한 후 출사(出仕)할 뜻을 접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격문을 돌려 의병을 모으고는 고경명(高敬命), 조헌(趙憲), 김천일(金千鎰) 등에게 보내고 화약과 화살 등 군기를 지원하였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이 일어나 왜군이 부안에 침입하여 노략질을 하였다. 이에 이유는 의병을 이끌고 청등(淸嶝)에서 교전하였으나 수적 열세로 전사하였고, 이 소식을 들은 이유의 부인 부안 김씨(扶安金氏)가 남은 병졸을 이끌고 맞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이유와 그 부인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자 제자들이 신발과 의복으로 장례를 치렀다고 전한다.
[상훈과 추모]
근동 사람들이 이유가 전사한 곳을 ‘호퇴치(胡退峙)’라고 불렀으며 이유와 그 부인의 충렬(忠烈)을 추모하기 위하여 무덤 근처에 타루비(墮淚碑)를 세워 주었는데, 세월이 흘러 타루비가 유실되자 후손이 1979년 다시 건립하였다.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384-11번지에 고예진이 글을 지은 타루비가 서 있고, 부안군 상서면 통정리 564번지에 이유 유허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