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6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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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鶴鎭 |
영어공식명칭 | Baek Hakjin |
이칭/별칭 | 백학래(白鶴來),은문(殷聞),청전(靑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주산면 돈계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류호석 |
출생 시기/일시 | 1821년 - 백학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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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59년 - 백학진 진사시 합격 |
몰년 시기/일시 | 1889년 - 백학진 사망 |
출생지 | 백학진 출생지 - 전라북도 부안군 주산면 돈계리 |
성격 | 문인 |
성별 | 남 |
본관 | 수원(水原) |
[정의]
조선 후기 부안 출신의 문인.
[가계]
백학진(白鶴鎭)[1821~1889]의 본관은 수원(水原)이며, 자는 은문(殷聞), 호는 청전(靑田)이다. 증광 진사시 합격 당시의 방목에는 백학래(白鶴來)로 되어 있다. ‘백학진’이라는 이름은 뒤에 개명한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는 백동호(白東顥)이다.
[활동 사항]
백학진은 1821년 전라북도 부안군 주산면 돈계리에서 태어났다.1859년(철종 10) 증광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문과에는 급제하지 못했지만 계속 응시를 한 것으로 보인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1885년(고종 22) 5월 26일조의 기록에는 백학진이 1882년(고종 19) 9월의 추도기(秋到記)[조선 시대 때 성균관과 사학에서 공부하는 유생들이 출석 일수를 채운 뒤 가을에 보던 시험]에 입격하여 다른 유생들과 함께 1분(分)의 특전을 받게 되어 증광 문과 초시 응시의 기회를 얻었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증광 진사시에 합격한 지 26년이 지난 때이자, 백학진의 나이 65세 때로 세상을 떠나기 4년 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백학진은 이 증광시에 급제하지 못하였다.
백학진은 조선 후기에 활동했던 뛰어난 시인 중 한 사람으로, 시를 잘 지었기 때문에 중국 사신을 응대하는 접반(接伴)으로 자주 선발되었다. 특히 백학진의 당대에 “청전(靑田)에 백학래(白鶴來)요, 단산(丹山)에 김봉효(金鳳孝)다”라는 말이 회자되었는데, 곧 푸른 들판에 흰 학이 날아들고 붉은 산에는 봉황새가 내려앉는다는 의미로, 시를 잘 지었던 두 사람을 칭송하는 말이었다. 조선 말 한문 사대가(漢文四大家)의 한 사람인 김택영(金澤榮)[1850~1927]의 문집 『소호당집(韶濩堂集)』에는 젊은 시절의 김택영이 백학래에게 주는 시 한 편이 실려 있다. 「부안에서 청전 백 진사 학래에게 주다[扶安贈靑田白進士鶴來]」가 바로 그것으로, 두 사람 간에 상당한 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학문과 저술]
1992년에 와서 백학진의 시 470여 수를 모은 『청전시집(靑田詩集)』이 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