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6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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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鼎吉 |
영어공식명칭 | Gim Jeonggil |
이칭/별칭 | 응구(應九)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월천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류호석 |
출생 시기/일시 | 1576년 - 김정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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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7세기 초 - 김정길 군자감 참봉에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36년 - 김정길 병자호란 때 창의 활동 |
몰년 시기/일시 | 1645년 - 김정길 사망 |
출생지 | 김정길 출생지 -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월천리 판곡마을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부안(扶安) |
[정의]
조선 후기 부안 출신의 학자.
[가계]
김정길(金鼎吉)[1576~1645]의 본관은 부안(扶安)이며, 자는 응구(應九)이다. 문정공(文貞公) 김구(金坵)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주부(主簿) 김경정(金景貞)이고, 아버지는 죽계(竹溪) 김횡(金鋐)이다.
[활동 사항]
김정길은 1576년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월천리 판곡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고 형제 간에도 우애가 돈독하였다. 인조 때 학행으로 천거되어 군자감 참봉(軍資監參奉)에 제수되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자, “임금이 욕을 당하니 신하는 마땅히 죽는 것이 분수이다”라고 하면서 의병과 의곡(義穀)을 모아 동지들과 함께 여산(礪山)[전라북도 익산시 지역의 옛 지명]의 창의소에 도착하였다. 이때 창의소에는 현감 이흥발(李興浡), 찰방 이기발(李起浡), 군수 최온(崔蘊), 한림(翰林) 양만용(梁曼容), 찰방 유집(柳揖) 등이 모두 모였다. 김정길은 이들과 함께 여러 고을에 격문을 전하며 청주(淸州)까지 나아갔지만, 화의(和議)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문을 닫고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1645년(인조 23) 향년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