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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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相誠 |
영어공식명칭 | Gim Sangseong |
이칭/별칭 | 내실(乃實),확은(確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내요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류호석 |
출생 시기/일시 | 1768년 - 김상성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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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786년 - 김상성 생원시 합격 |
몰년 시기/일시 | 1827년 - 김상성 사망 |
출생지 | 김상성 출생지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내요리 |
거주|이주지 | 김상성 거주지 -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 인촌마을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부안(扶安) |
[정의]
조선 후기 부안 출신의 학자.
[가계]
김상성(金相誠)[1768~1827]의 본관은 부안(扶安)이고, 자는 내실(乃實), 호는 확은(確隱)이다. 군사(郡事) 김광서(金光敍)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김경로(金敬魯)이다. 생부는 권농가(勸農歌)를 지은 것으로 널리 알려진 김익(金瀷)인데, 김상성은 큰아버지 김옥(金沃/土)의 양자로 들어갔다. 김옥은 1768년(영조 44) 식년 진사시에 합격했으며 성균관에서 수학하였다.
[활동 사항]
김상성은 양부 김옥이 진사시에 합격한 1768년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내요리에서 태어났다. 1786년(정조 10) 19세의 나이로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했으나 문과에 급제하지는 못하였다. 이후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을 단념하고 평생 학문에만 정진하였다. 생원시 합격 후, 관로에 들어가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했기 때문에 김상성의 활동 상황을 보여주는 기록은 오늘날 남아 있지 않다. 김상성은 한때 흥덕현의 인촌[현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에 거주하였는데, 그곳에 많은 농토를 소유하면서 부유하게 살았다고 한다. 이 시기에 「어부사(漁父詞)」에 해당하는 「서호별곡(西湖別曲)」을 지은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한편 김상성의 생원시 합격을 보여 주는 해당 방목 『숭정3병오식년사마방목(崇禎三丙午式年司馬榜目)』[소장 국립중앙도서관]이 오늘날 전하고 있다.
[학문과 저술]
문집으로 『확은유고(確隱遺稿)』[필사본 2책]가 있다. 여기에는 시, 기(記), 가사 등이 실려 있는데, 유명한 「서호별곡」도 포함되어 있다. ‘서호(西湖)’는 부안과 고창 사이에 있는 줄포만을 가리킨다. 또한 윤치수(尹致秀)가 지은 김상성의 행장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