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6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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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致遠 |
영어공식명칭 | Gim Chiwon |
이칭/별칭 | 사의(士毅),계곡(桂谷),직절(直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송만오 |
[정의]
조선 후기 부안 출신의 문신.
[가계]
김치원(金致遠)[1572~?]의 본관은 부안(扶安)이며, 자는 사의(士毅), 호는 계곡(桂谷)·직절(直節)이다. 문정공(文貞公) 김구(金垢)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김종(金宗)이고, 할아버지는 김승정(金承貞)이며, 아버지는 김장(金鏘)이다. 부인은 김정간(金廷幹)의 딸이다.
[활동 사항]
김치원은 1572년 전라북도 부안군에서 태어났다. 32세 때인 1603년(선조 36) 계묘 식년시(癸卯式年試) 문과에 급제하였다. 문과 급제 후 내직(內職)으로는 1606년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 예조 좌랑(禮曹佐郞)을 거쳐, 1607년 병조 좌랑(兵曹佐郞),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 등을 지냈다. 행충무위 부사과(行忠武衛副司果)로서 춘추관 기사관(春秋館記事官)이 되어 『선조실록(宣祖實錄)』의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사간원 정언으로 있으면서 김치원은 광해군의 실정을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광해군의 미움을 사고 또 대북파의 공격을 받아 삭직(削職)되기도 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이후 김치원은 다시 관계에 진출하여 사간원 사간(司諫), 사헌부 집의(執義), 세자시강원 보덕(世子侍講院報德), 승지(承旨), 대사헌(大司憲), 병조 참판(兵曹參判), 예조 참판(禮曹參判) 등을 지냈으며, 외직(外職)으로는 고산찰방(高山察訪), 개성경력(開城經歷), 경주부윤(慶州府尹), 평양서윤(平壤庶尹), 서흥부사(瑞興府使), 종성부사(鍾城府使) 등을 지냈다. 세상 사람들은 김치원을 절개가 곧은 사람이라고 칭송하였다. 김치원의 묘비문은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이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