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6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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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命說 |
영어공식명칭 | Gim Myeongyeol |
이칭/별칭 | 군보(君輔)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송만오 |
출생 시기/일시 | 1613년 - 김명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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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51년 - 김명열 문과 급제 |
출생지 | 김명열 출생지 -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 |
묘소|단소 | 김명열 묘소 -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 금동길 51-8[장동리 406-43]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부안(扶安) |
대표 관직 | 남원부사|순천부사 |
[정의]
조선 후기 부안 출신의 문신.
[가계]
김명열(金命說)[1613~?]의 본관은 부안(扶安)이며, 자는 군보(君輔)이다. 할아버지는 증호조 참판 김경순(金景順)이고, 아버지는 담양부사 김홍원(金弘遠)이다.
[활동 사항]
김명열은 1613년(광해군 5)에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에서 태어났다. 기암(畸庵) 정홍명(鄭弘溟)으로부터 글을 배웠으며, 노봉(老峰) 민정중(閔鼎重)과는 도의로 사귀었다. 39세 때인 1651년(효종 2)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내직(內職)으로는 예조 정랑(禮曹正郞), 호조 정랑(戶曹正郞)을, 외직(外職)으로는 경성부사(鏡城府使), 황주목사(黃州牧使), 강릉부사(江陵府使), 남원부사(南原府使), 순천부사(順天府使) 등을 지냈다. 그러나 관직 생활에 관심이 없었던지 김명열은 황주판관, 평산부사로 재임하면서 부모 묘의 이장(移葬)[장사 지낸 사람의 묘를 다른 곳으로 옮겨 다시 장사를 지냄]과 숙질(宿疾)[오래 묵은 병]을 핑계로 사임하려고 했었다. 김명열이 관직을 그만두려 했던 이유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한편 김명열이 벼슬길에 나아가기 전인 1636년에 병자호란이 일어났는데, 아버지 김홍원의 명에 따라 의병을 일으켜 북상(北上)하다가 오랑캐와 화의(和議)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묘소]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 금동길 51-8[장동리 406-43]에 묘소와 묘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