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6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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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孫弘績 |
영어공식명칭 | Son Hongjeok |
이칭/별칭 | 언선(彦善),도봉(道峯)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장순순 |
출생 시기/일시 | 1510년 - 손홍적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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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40년 - 손홍적 소과 합격 |
활동 시기/일시 | 1543년 - 손홍적 문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47년 - 손홍적 승정원 주서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548년 - 손홍적 평안도 위원으로 유배 |
몰년 시기/일시 | 1549년 - 손홍적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567년 - 손홍적 신원 |
추모 시기/일시 | 1779년 - 손홍적 옹정서원 배향 |
출생지 | 손홍적 출생지 - 전라북도 부안군 |
유배|이배지 | 손홍적 유배지 - 평안도 위원 |
사당|배향지 | 옹정서원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옹중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밀양(密陽) |
대표 관직 | 승정원 주서 |
[정의]
조선 전기 부안 출신의 문신.
[가계]
손홍적(孫弘績)[1510~1549]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언선(彦善), 호는 도봉(道峯)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예문관 부제학 손비장(孫比長)이고, 아버지는 충순위(忠巡衛) 손중로(孫重老)이다.
[활동 사항]
손홍적은 1540년(중종 35) 소과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갔다. 1543년(중종 38)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藝文官檢閱)이 되었다. 1547년(명종 2) 승정원 주서로 전라도 부안현에 살고 있는 아버지 손중로를 만나고 귀경하면서 본 백성의 고통을 적은 서계(書啓)를 올렸다. 그 내용은 부안(扶安)·고부(古阜)·태인(泰仁)·김제(金堤) 등이 큰비와 메뚜기[황충(蝗蟲)]로 인한 피해가 커서 백성들이 살기가 어려운 데다, 특히 전라도 부안현에는 녹포(鹿脯)[제물 가운데 사슴 고기로 만든 포]의 진상으로 백성들의 고통이 더욱 심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국왕은 손홍적의 서계에 따라 전라도의 녹포 진상을 이듬해인 1548년(명종 3)까지 면제해 줄 것을 명하였다. 1548년 사관(史官)으로 있을 때, 이기(李芑) 등의 무고로 안명세 사초 사건(安名世史草事件)이 일어나자 이에 연루되어 평안도 위원(渭原)에 유배되었다가 1549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1567년(선조 즉위년)에 신원되었으며, 1779년(정조 3)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옹중리에 있던 옹정서원(甕井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