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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601
한자 孫比長
영어공식명칭 Son Bijang
이칭/별칭 영숙(永叔),입암(笠巖)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장순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464년 - 손비장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469년 - 손비장 『세조실록』 및 『예종실록』 편찬
활동 시기/일시 1471년 - 손비장 이조 정랑 제수
활동 시기/일시 1475년 - 손비장 사헌부 장령 제수
활동 시기/일시 1476년 - 손비장 문과 중시 급제
활동 시기/일시 1476년 - 손비장 예문관 부제학·참찬 제수
활동 시기/일시 1477년 - 손비장 행부호군 제수
활동 시기/일시 1478년 - 손비장 파직
활동 시기/일시 1485년 - 손비장 『동국통감』 편찬
활동 시기/일시 1485년 - 손비장 예문관 부제학 제수
거주|이주지 손비장 낙향지 - 전라북도 부안군 주산면 갈촌리지도보기
묘소|단소 손비장 묘소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봉덕리지도보기
사당|배향지 봉덕재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봉덕리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밀양
대표 관직 공조 참의|장례원 판결사|예문관 부제학

[정의]

조선 전기 부안 출신의 문신.

[가계]

손비장(孫比長)[?~?]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영숙(永叔), 호는 입암(笠巖)이다. 아버지는 현감 손민(孫敏)이고 부인은 전주 최씨(全州崔氏)이다. 1545년 을사사화(乙巳士禍) 때 화를 당한 도봉(道峯) 손홍적(孫弘績)임진왜란 때 『조선왕조실록』 보존에 공이 있는 한계(寒溪) 손홍록(孫弘祿)이 그의 증손이다.

[활동 사항]

손비장은 1464년(세조 10)에 생원으로 온양(溫陽)에서 설행된 별시 문과(別試文科)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469년 신숙주(申叔舟) 등과 『세조실록(世祖實錄)』 및 『예종실록(睿宗實錄)』을 편찬하였으며, 그 공으로 1471년 이조 정랑에 제수되었다. 1475년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이 되어 여러 차례 시무소(時務疏)를 올렸다. 1476년(성종 7)에는 문과 중시(重試)에 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 부제학·참찬이 되어, 간언에 기꺼이 따를 것과 대간의 임기를 연장할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시무4조(時務四條)를 왕에게 건의하였다. 1477년 행부호군에 올랐다. 1478년 승지로서 왕이 성균관에 행차할 때 예에 어긋났다는 죄로 파직되었다.

성종 때에는 홍문관(弘文館)에 15학사로 뽑혀서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과 함께 학문을 연구하였다. 1485년(성종 16) 사가정(四佳亭) 서거정(徐居正) 등과 함께 『동국통감(東國通鑑)』을 편찬하여 왕에게 바쳤다. 공조 참의, 장례원 판결사, 예문관 부제학을 거쳤다. 만년에는 고향인 부안으로 낙향하여 지금의 전라북도 부안군 주산면 갈촌리에 영귀당(詠歸堂)이라는 정자를 세우고, 호를 ‘입암(笠巖)’이라 짓고, 당대의 석학인 뇌계(雷溪) 유호인(俞好仁), 매계(梅溪) 조위(曺偉) 등과 시문을 주고받으며 노후를 보냈다.

[묘소]

묘소는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봉덕리인 안쟁가리 부안동초등학교 뒷산에 부인 전주 최씨와 함께 합장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손비장의 묘소 옆에 재각인 봉덕재(奉德齋)가 있는데, 후창(後滄) 김택술(金澤述)이 상량문과 재기를 지었다. 묘소의 서남쪽에는 손비장 신도비(神道碑)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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