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5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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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泰仁許氏 |
영어공식명칭 | Taein Heossi|Taein Heo Clan |
이칭/별칭 | 성메 허씨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동희 |
본관 | 태인 -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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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태인 허씨 입향지 - 전라북도 부안군 |
세거|집성지 | 태인 허씨 세거지 -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부곡리 성메마을|행안면 신기리 청교마을 |
성씨 시조 | 허사문(許士文) |
입향 시조 | 허사문(許斯文) |
[정의]
허사문(許士文)을 시조로 하고 허사문(許斯文)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부안군의 세거 성씨.
[연원]
태인 허씨(泰仁許氏)의 시조 허사문(許士文)은 가락국 김수로왕(金首露王)의 왕비인 허황옥(許黃玉)의 30세손으로 전한다. 고려 태조(太祖) 왕건(王建)의 사위가 되어 시산군(詩山君)에 봉하여지자 본관을 김해에서 시산으로 바꾸었다. 이후 시산(詩山)이 태인(泰仁)으로 개칭되자 본관을 태인으로 바꾸었다.
[입향 경위]
조선 전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태인 허씨가 실려 있지 않다. 1790년대 편찬된 『호남읍지(湖南邑誌)』「부안현(扶安縣)」에 태인 허씨가 처음 등장하며, 1887년(고종 24) 편찬된 『부안지(扶安誌)』 성씨 조에는 태인에서 들어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입향조는 허경(許慶)의 아들 지재(止齋) 허사문(許斯文)으로 알려져 있다. 허사문은 1439년(세종 28)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사헌부 지평을 지내고 지평공파 중시조가 되었다. 태인 허씨는 조선 전기 이래로 과환(科宦)과 부(富)가 끊이지 않는 명문가로 보안면 일대에서 세거하였는데 대부분 허사문의 자손들이었다. 보안면 묵방산(墨房山)[부안군 보안면 월천리]의 동남 성메[城山]에 세거하였으므로 세칭 ‘성메 허씨’라고도 부른다. 허사문의 아우 허사행(許斯行)은 직장(直長)을 지냈으며, 보안면 성메에서 행안 청교리(淸橋里)[현 행안면 신기리 청교마을]로 이주하여 그 자손들이 세거하면서 번성하였다.
[인물]
허사문(許斯文)의 아들 허승원(許承元)은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허승원의 아들 허회(許會)는 습독(習讀)을 지냈다. 허승원의 손자가 동상공(東湘公) 허진동(許震童)이다. 허진동은 영의정 박순(朴淳)의 문인으로 학덕이 높았고 수운 판관(水運判官)을 지냈다. 문집으로 『동상선생문집(東湘先生文集)』이 전한다. 낙향하여 우반동에 은거하였는데 정여립(鄭汝立)이 찾아와 변산에 별장을 짓는다고 선산의 재목을 요청하였으나 거절하였다는 일화가 전한다.
허진동의 아들 허구전(許九田)은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허구잠(許九潛)은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지냈으며 명필이었다. 1894년(고종 31) 허진동의 후예인 허권(許權)은 기정진의 문인으로 조선의 마지막 식년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허권의 처 경주 김씨(慶州金氏)의 열행이 알려져 나라에서 정문을 내렸다.
허진동의 아우 허창동(許昌童)은 박순에게 수학하고 봉사(奉事)를 지냈다. 허창동의 두 아들 허구관(許九觀)과 허구겸(許九謙)도 봉사와 참봉을 지냈다. 일진그룹 회장 허진규(許鎭奎)가 부안 태생의 태인 허씨이다.
[현황]
2015년 인구 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부안군에는 허씨가 538명 살며, 이 중 태인 허씨는 294명이다. 1991년 발간된 『부안군지』에는 보안면, 행안면, 주산면, 줄포면 등지에 태인 허씨가 살고 있다.
[관련 유적]
허진동을 배향한 유천서원(柳川書院)이 부안군 보안면 영전길 89-38[영전리 212-3번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