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5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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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平山申氏 |
영어공식명칭 | Pyeongsan Sinssi|Pyeongsan Sin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동희 |
본관 | 평산 - 황해도 평산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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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평산 신씨 입향지 -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 파산리|하서면 삼산리|행안면 |
세거|집성지 | 평산 신씨 세거지 -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식도리|진리|줄포면 파산리|하서면 삼산리|행안면 |
성씨 시조 | 신숭겸(申崇謙) |
입향 시조 | 신훤(申楦)|신백(申栢)|신진(申鎭) |
[정의]
신숭겸을 시조로 하고, 신훤·신백·신진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부안군의 세거 성씨.
[연원]
평산 신씨(平山申氏) 시조는 고려 개국 공신 신숭겸(申崇謙)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전라남도 곡성 사람이라고 나와 있으나 『고려사』에는 강원도 춘천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본래 곡성 출신으로 후에 춘천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신숭겸의 후예들은 훗날 25파로 나뉘었다.
[입향 경위]
조선 전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부안 성씨조에는 평산 신씨가 올라와 있지 않다. 그러다가 1790년대에 작성된 『호남읍지(湖南邑誌)』「부안현(扶安縣)」에 평산 신씨가 밖에서 들어온 성으로 올라와 있다. 이로 미루어 평산 신씨는 조선 건국 후 부안으로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평산 신씨 밀직공파인 신훤(申楦)이 처음 부안으로 들어왔고, 그 후손이 줄포면 파산리에서 세거하였다. 하서면 삼산리에는 같은 밀직공파인 신백(申栢)이 전라남도 곡성에서 들어와서 살았다. 행안면 산정리에는 사간공파 신진(申鎭)이 경기도 여주에서 들어와 세거하였다. 위도면의 식도리와 진리에도 평산 신씨가 세거하였는데, 특히 진리 벌금마을은 조선 후기 창녕 조씨(昌寧曺氏)와 평산 신씨가 정착하여 형성된 마을이다. 부안읍 외하리에도 평산 신씨가 세거하였다.
인조(仁祖) 때 영의정을 지낸 신흠(申欽)의 증손자 신만(申曼)은 17세 때 병자호란을 당하여 부모와 처를 데리고 강화(江華)에 피난 갔다가 어머니와 처 홍씨(洪氏)가 해를 입고 죽는 치욕을 겪었다. 이에 한양으로 돌아가지 않고 부안 백연동(白蓮洞)과 진잠(鎭岑) 구봉산(九峰山)에 들어가 칩거하였다고 전한다.
[현황]
2015년 인구 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부안군에는 신씨가 800명 살며, 이 중 평산 신씨는 701명이다. 인구 순으로 보면 부안의 본관별 성씨 453개 중에서 31번째이다. 1991년 발간된 『부안군지』에는 주산면, 행안면, 보안면, 변산면, 백산면, 줄포면, 위도면 등지에 평산 신씨가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