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5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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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州金氏 |
영어공식명칭 | Gyeongju Gimssi|Gyeongju Gim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원철 |
본관 | 경주 - 경상북도 경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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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경주 김씨 입향지 - 전라북도 부안군 |
세거|집성지 | 경주 김씨 세거지 -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상서면|주산면 돈계리|줄포면|행안면 삼간리 |
성씨 시조 | 김알지(金閼智) |
입향 시조 | 김치(金致)|김격(金格) |
[정의]
김알지를 시조로 하고, 김치·김격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부안군의 세거 성씨.
[연원]
우리나라 김씨 성은 두 계열인데 김알지(金閼智) 자손 계열과 김수로왕(金首露王) 자손 계열이다. 경주 김씨(慶州金氏)는 김알지 계열로 대본(大本)을 이룬 성씨이다. 김알지와 관련한 전설은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 등에 자세히 나오는데, 그 금궤에서 나온 아이의 자손들 가운데 신라의 왕[전체 56왕]이 된 사람은 38명이다. 김해 김씨(金海金氏)를 제외한 김씨는 모두 김알지의 자손들이다.
신라 경순왕(敬順王)은 8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첫째는 마의 태자이고, 둘째는 울산 김씨(蔚山金氏), 셋째는 경주 김씨 영분공파(永芬公派), 넷째는 경주 김씨 은열공파(殷說公派), 다섯째는 의성 김씨(義城金氏), 여섯째는 강릉 김씨(江陵金氏), 일곱째는 언양 김씨(彦陽金氏), 여덟째는 삼척 김씨(三陟金氏)의 1세조가 되었다.
경주 김씨는 대부분 영분공파 1세조인 셋째 김명종(金鳴鐘)과 대안군파(大安君派) 1세조인 넷째 김은열(金殷說), 고려 때 대장군(大將軍)을 지낸 김순웅(金順雄)을 중시조로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입향 경위]
부안에 처음 들어온 경주 김씨 입향조는 김알지의 후손으로 세종(世宗) 때 사람인 김치(金致)와 김격(金格) 형제이다. 김치의 선계는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敬順王)의 후손 정숙공(貞肅公) 김인경(金仁鏡)이다. 이 형제들이 부안으로 들어왔고, 이후 후손이 행안 마동[현 행안면 삼간리]과 주산면 돈계리, 동진면과 줄포면 등에서 세거하였다.
김치(金致)는 군수를 지냈으며, 큰아들 김사원(金祠元)은 주부(主簿)이고 둘째 아들 김한원(金漢元)은 별좌(別坐)였다. 김한원의 아들 김기종(金起宗)은 시직(侍直)이었고 그 아들 김윤종(金潤宗)은 사헌부 장영(司憲府掌令)을 지냈다.
김치의 동생 김격(金格)은 진사였고, 현손 김치장(金致章)은 현감을 지냈다. 김치장은 아들 5형제를 두었는데 큰아들 김등(金邆)은 진사를 지냈고, 둘째 아들 김청(金淸)은 행안 마동에서 출생하여 1553년(명종 8)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이조 참의(吏曹參議), 대사성(大司成), 대사간(大司諫)과 12개 고을 주목(州牧)의 수령을 지냈다. 동생 김온(金溫), 김항(金沆), 김연(金演)은 그 형 김증(金潧)과 함께 진사시에 합격하여 명성을 떨쳤다. 김청의 아들 김등은 호가 죽당(竹堂)인데 진사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만 힘썼다. 그 5세손 김석용(金錫龍)은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 지평을 지냈다.
순조(純祖) 때 태사공(太師公) 김인관(金仁琯)을 파조로 하는 김노달(金魯達)이 충주에서 부안으로 들어왔다. 김노달은 사복시정(司僕寺正)을 지냈으며 그의 두 아들 김치희(金致喜)와 김윤희(金允喜)도 승지를 지냈으며 그 후손들이 번창하였다. 또 계림군파(鷄林君派) 김석희(金錫熙)도 남원에서 들어와 살았다. 김석희는 조선 개국 공신인 계림군(鷄林君) 김균(金稛)의 후손이다.
[현황]
2015년 인구 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부안군에는 경주 김씨 1,477명이 살고 있다. 경주 김씨는 상서면을 중심으로 부안군 전역에서 세거한다.
[관련 유적]
김응규(金應圭)와 그의 부인 부안 김씨(扶安金氏), 김응종(金應鍾)과 그의 부인 전주 이씨(全州李氏)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기 위한 경주 김씨 정려가 부안군 상서면 고인돌로 45-21[용서리 132번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