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5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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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月印千江之曲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선아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397년 - 세종대왕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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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 1447년 - 「월인천강지곡」 저술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447년 또는 1450년 - 「월인천강지곡」 간행 |
저자 몰년 시기/일시 | 1450년 - 세종대왕 사망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63년 9월 2일 - 「월인천강지곡」 보물 398호 지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17년 1월 2일 - 「월인천강지곡」 국보 제320호로 승격 |
배경 지역 | 실상사 -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
성격 | 한글 가사 |
작가 | 세종대왕 |
[정의]
1447년 세종이 석가모니의 공덕을 찬송하기 위해 지은 노래.
[개설]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은 1914년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에 있던 실상사 불상의 복장물(腹藏物)[불상 안에 넣는 물품]로 발견된 세종이 지은 악장(樂章)이다. 1446년(세종 28) 소헌 왕후 심씨가 죽자 세종은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아들인 수양 대군[세조]에게 명하여 불교 서적을 참고하여 『석보상절』을 편찬하였다. 이듬해 1447년(세종 29) 세종은 『석보상절』을 읽고 각각 2구절에 따라 그 대목 대목을 되도록 한글로써 가사를 지은 것이 「월인천강지곡」이다. 이는 상중하 3권으로 구성되었으나 상권만 현존한다.
[구성]
『월인천강지곡』은 상·중·하, 3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현재 상권만 존재하고 있다. 상권에는 1에서 194까지 194곡이 남아 있다. 이밖에 『석보상절』 권6[145-154와 174-175의 12곡], 권9[254-255 2곡], 권13[275 1곡]에 15곡이 남아 있다. 『월인석보』에 377곡과 260의 후절(後節)이 남아 있다. 총 583곡으로 추정되는 전곡(全曲) 가운데 303-311의 9곡[『월인석보』 권16 부전], 520-576의 56곡[『월인석보』 권24 부재] 등 65곡의 가사가 없으며, 따라서 현전하는 『월인천강지곡』은 총 518곡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내용]
「월인천강지곡」의 ‘월인천강’은 밝은 달빛이 세상의 모든 강물에 고루 다 비친다는 뜻으로, 부처님의 교화(敎化)가 온 세상에 가득함을 비유한 것이다. 불교의 윤회 사상을 바탕으로 ‘기일(其一)’은 설의법과 과장법을 동원하여 끝없이 넓고 크신 석가모니의 공덕을 찬양하였고, ‘기이(其二)’는 2절 4구의 형식을 갖추어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와 같은 악장체 문학의 정형을 이루었다. ‘기삼(其三)’은 석가 세존이 태어나기 전 세상의 이야기로, 구담씨(瞿曇氏)의 내력을 밝힌 내용이다.
[특징]
15세기 중반에 세조의 원당(願堂)이었던 부안의 실상사 불상의 복장물로 봉안되었는데, 1914년에 부안 내소사 주지가 훼손된 불상을 소각하기 직전 복장을 열면서 발견되었다. 대한교과서[현 미래엔]가 인수해 2013년 한국학중앙연구원[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 장서각에 기탁하였다. 1963년 보물 제398호로 지정됐다가, 2017년 1월 2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320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최초의 한글 활자본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은 유물이다. 또한 조선 전기의 언어와 어법을 연구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는 문헌이다. 한글은 큰 활자로 쓰고, 이에 해당하는 한자는 작은 활자로 표기하였다. 한글의 자체는 『용비어천가』와 같으나 원점을 쓰지 않았으며, 『훈민언해』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받침 없는 한자음에 ‘ㅇ’의 종성을 붙이지 않았다는 점이 특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