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5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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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老休齋所藏古文書 |
이칭/별칭 | 노휴재 문서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서림공원길 4[동중리 1구 302-1]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류호석 |
소장처 | 노휴재 소장 고문서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서림공원길 4[동중리 1구 3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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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고문서 |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 노휴재에 소장되어 있는 고문서.
[개설]
노휴재(老休齋)는 처음에는 부안의 유력 씨족인 영월 신씨(寧越辛氏)와 진주 김씨(晉州金氏)를 중심으로 1798년(정조 22)에 조직된 향중 노인들의 모임이었다. 향리의 여러 사람들이 모여 시문도 짓고 향촌의 풍속을 교정하기도 하였다. 향약(鄕約)과는 다른 일종의 계(契) 모임인 셈이다. 처음에는 두 씨족의 자손들로만 조직되어 오다가 차츰 다른 성씨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하였다. 원래는 남영계(南英契)라고 불리었다. 초창기에 부안군 부안읍 서외리 부안신용협동조합 건물 자리에 남영재(南英齋)를 지었고 1816년(순조 16)에 현재의 노휴재 위치인 객사 옆으로 옮겨졌으며, 1869년에 이르러 ‘노휴재’로 개칭되었다. 1934년에 한옥 목조 건물로 개축하였는데 이것이 지금의 노휴재다.
노휴재에 오랫동안 보관되어 왔던 자료들은 5백여 점에 이르는 전적과 고문서 및 성책 문서, 그리고 시청각 자료들로 구성되어 있다. 상당수는 일제 강점기에서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부안 지역과 관련된 사진 자료들과 계약서, 위임장, 간찰 등 다양한 문서들이어서 부안의 지역사를 살펴보는 데 유익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한편 18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작성된 노휴재의 계안(契案)들도 적지 않아서, 당시 부안 유림의 실체를 규명하는 데에도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노휴재 문서’라고도 부른다.
[구성/내용]
노휴재 소장 고문서들 중 일부는 호남권한국학자료센터 홈페이지에 탑재되어 있다. 이를 토대로 하여 주요 문서들의 내용을 옮겨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1804년 부풍부로계안(扶風父老禊案)
1804년(순조 4)에 전라도 부안현의 노휴재에서 작성된 계원 명부이다. 책의 표지에 ‘창설호 부풍부로계안(刱設号 扶風父老禊案)’이라고 적혀 있다. 책의 맨 앞쪽에는 갑자년 9월 초에 쓴 김성록(金性淥)의 서문이 적혀 있다. 이어서 오중신(吳重愼) 등 27명의 계원 명단을 적은 좌목(座目)이 실려 있다. 각 인물마다 생년 간지와 자, 본관, 그리고 사망 일자가 적혀 있다. 좌목의 명단 앞에 “임신 유월 이십일 일 개수(壬申六月二十一日改書)”라고 적혀 있는 데서 보듯이, 이 계안은 작성된 시점으로부터 8년이 지난 뒤에 새로 고쳐 쓴 것이며, 계원의 사망 일자가 적혀 있게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좌목에 이어 22개 조항에 이르는 계의 규약이 실려 있는데, 끝부분에 “경오삼월삼일(庚午三月三日)”이라고 작성 연도를 적어 놓았다. 계의 운영과 경조사 때의 자금 조달과 지출 방법 등을 기술해 놓은 것이다.
2. 1823년 부안(扶安) 남영계첩(南英禊帖)
1823년(순조 23)에 전라도 부안현의 노휴재에서 작성한 계원 명부이다. 표지에는 ‘일호 남영계첩(壹号 南英禊帖)’이라고 적혀 있다. 책의 맨 앞에 도광(道光) 3년 계미, 즉 1823년 7월 7일에 장사랑(將仕郎) 신상억(辛尙億)이 작성한 서문이 실려 있다. 이어서 두 개 조항의 규약이 실려 있는데, 계안의 게판(揭板)과 향후 편찬 시의 수정 보완 사항이 기재되어 있다. 좌목에는 가선(嘉善) 김성록(金性淥) 등 16명의 명단이 실려 있다. 영월 신씨(寧越辛氏) 7명, 진주 김씨(晉州金氏) 6명, 해주 오씨(海州吳氏) 1명, 밀양 최씨(密陽崔氏) 1명, 밀양 박씨(密陽朴氏) 1명 등으로 영월 신씨와 진주 김씨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3. 1854년 부안(扶安) 남영중수계첩(南英重修禊帖)
1854년(철종 5)에 전라도 부안현의 노휴재에서 작성한 계원 명부이다. 표지에는 ‘이호 남영중수계첩(貳号 南英重修禊帖)’이라고 적혀 있다. 책의 맨 앞에 갑인년[1854년]에 신희조(辛希祚)가 작성한 서문이 실려 있으며, 이어서 숭정(崇政) 신희조(辛希祚) 등 14명의 명단이 실려 있다. 이들을 살펴 보면 영월 신씨가 8명, 진주 김씨가 5명, 한산 이씨(韓山李氏)가 1명이어서 사실상 영월 신씨와 진주 김씨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어서 세 개 조항에 이르는 계의 규약이 실려 있는데, 상사(喪事) 시의 부의(賻儀), 강신(講信) 방법, 비회원의 자녀 입안 시 5냥 기부 등을 규정하고 있다.
4. 1869년 부안(扶安) 운정속계첩(雲亭續禊帖)
1869년(고종 6)에 전라도 부안현의 노휴재에서 작성한 계원 명부이다. 표지에는 ‘삼호 운정속계첩(參号 雲亭續禊帖)’이라고 적혀 있다. 책의 맨 앞에 기사년[1869년]에 신동직(辛東稷)이 작성한 서문이 실려 있으며, 이어서 6개 조항에 이르는 계의 규약이 실려 있는데, 계의 운영과 자금 조달 및 운용 방안 등을 기술해 놓은 것이다. 좌목에는 신일환(辛一煥) 등 62명의 명단이 실려 있다. 이들 가운에 영월 신씨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책의 맨 끝에는 ‘촌계원(村禊員)’이라는 제목 아래 도사(都事) 송항대(宋恒大) 등 네 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5. 1875년 부안(扶安) 서림정(西林亭) 속첩(續帖)
1875년(고종 12)에 전라도 부안현의 서림정시계(西林亭詩禊)에서 작성한 계원 명단과 계원들의 시첩(詩帖)이다. 서림정은 부안의 노휴재 부근에 있는 정자로, 노휴재의 선비들이 이곳 서림정에 모여 시를 짓고 교유하였다. 책의 앞에 실려 있는 그림이 바로 서림정을 그린 것이다.
6. 1882년 부안(扶安) 서림정(西林亭) 속첩(續帖)
1882년(고종 19)에 전라도 부안현의 서림정시계에서 작성한 계원 명단과 계원들의 시첩이다.
7. 1541년 부안현 선생안(扶安縣先生案)
1541년(중종 36)에 전라도 부안현에서 처음 작성되기 시작하여 수령이 바뀔 때마다 계속 증보된 수령의 명부이다. 표제(標題)는 ‘선생안(先生案)’으로 기재되어 있다. 책의 맨 앞에 1541년 겨울에 김윤정(金胤鼎)이 작성한 서문이 실려 있다. 이어서 고려 말인 1382년(우왕 8)에 이곳의 안집별감(安集別監)으로 부임한 전 낭장(郎將) 황익상(黃益祥)을 시작으로 1906년에 부안군수를 지낸 통정대부 박일헌(朴逸憲)에 이르기까지 수백 명의 수령 명단이 실려 있다. 명단에는 성명과 부임 및 이임 연월일, 이임 사유 등이 기재되어 있으며, 1689년(숙종 15) 이후에는 호장(戶長)과 이방(吏房)의 명단도 함께 실려 있다.
8. 1790년 부안현(扶安縣) 병방 선생안(兵房先生案)
1790년(정조 14)에 전라도 부안현의 병방(兵房)에서 작성한 명부이다. 책의 맨 앞에 병방 군관(兵房軍官) 최덕립(崔德立)이 1790년 4월에 작성한 막부 선생안(幕府先生案) 서문이 실려 있다. 병방에 속한 무관들이 상사(喪事)에 서로 돕기 위하여 계를 결성하고 그 명단을 기록한 것이다. 계원의 명단은 행수(行首) 영선생안(領先生案)과 병방 선생안(兵房先生案), 도장 좌목(都將座目) 등 세 가지로 나누어져 실려 있는데, 중복하여 기록된 인물들도 있다. 이 성책 문서에는 병방이 어느 관청에 속한 것인지 밝혀져 있지 않지만, 이 문서가 부안 노휴재에 소장된 점으로 미루어 부안현의 병방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부터 일제 강점기에 이르기까지 부안 지역에서 활동했던 유력 토착 사류들의 구성과 변화를 살펴볼 수 있어서 부안 지역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