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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541
한자 蓬萊九曲巖刻書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산143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최범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건립 시기/일시 1925년연표보기 - 봉래 구곡 암각서 각자(刻字)
현 소재지 봉래 구곡 암각서 -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산143지도보기
성격 암각서|바위 글씨
관련 인물 김석곤(金晳坤)
크기(높이,길이,둘레) 115㎝[가로]|490㎝[세로]|6㎝[굵기]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봉래 구곡에 있는 일제 강점기의 바위 글씨.

[건립 경위]

1925년에 동초(東樵) 김석곤(金晳坤)[1874~1948]이 쓴 글씨를 너럭바위에 새겼다.

[위치]

봉래 구곡 암각서(蓬萊九曲巖刻書)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산143번지, 봉래 구곡(蓬萊九曲)의 제5곡 봉래곡(蓬萊曲)에 있다.

[형태]

넓은 바위에 ‘봉래 구곡’이라는 초서체 글씨가 위에서 아래쪽으로 새겨져 있다. 크기는 가로 115㎝, 세로 490㎝, 굵기 6㎝이다.

[현황]

봉래 구곡변산 지역을 대표하는 계곡으로, 신선대 신선샘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망포대, 분초대에서 발원한 물줄기와 해발 150여 m에 위치한 산곡의 분지 마을 대소(大蕭)에서 만나 직소 폭포(直沼暴布), 분옥담(墳玉潭), 선녀탕(仙女湯) 등의 빼어난 경관을 연출하며 굽이굽이 흘러 서해로 빠진다. 아홉 곳에 아름다운 절경이 있어 ‘봉래 구곡’이라고 하며, 이 중 제5곡 봉래곡의 넓은 바위 위에 ‘봉래 구곡’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 아홉 곡 전체를 가리키는 이름이 되었다.

제1곡 대소(大沼)는 대소마을 아래에 있다. 소(沼)가 마치 말의 구유처럼 기다랗게 생겨 ‘구시둠벙’이라고도 부른다. 제2곡 직소 폭포변산의 가장 중심에 위치한다. 채석강과 함께 변산을 대표하는 경관으로 변산 팔경(邊山八景) 중의 일경이다. 20여 m의 암벽 사이로 흰 포말을 일으키며 쉴 새 없이 비류직하(飛流直下)하여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은 소를 만든다. 이 소를 실상용추(實相龍湫)라고 하며, 용이 살고 있다는 전설이 있다. 실상용추를 맴돌며 잠시 숨을 고른 물살은 다시 아래로 흘러 또 한 번 폭포를 이루니 이른바 제3곡 분옥담이다. 제3곡 분옥담을 휘몰아친 물살은 굽이굽이 200여 m 달려 또 하나의 소를 만드니 제4곡 선녀탕이다. 선녀가 목욕을 하였다는 제4곡 선녀탕은 마치 석공이 정교하게 깎아 놓은 듯한 소로, 깊이가 2.4m~3m 정도 된다. 제4곡 선녀탕을 달려온 물이 굽이굽이 돌아 반석 아래 작은 웅덩이를 만들고 머무는 듯 넘나드는 곳이 제5곡 봉래곡이다. 이곳을 ‘봉래 구곡’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봉래 구곡 중 가장 중심지인데다 물이 흐르는 암반 위에 ‘봉래 구곡’이라 한자로 새겨져 있어 어느 때부터인지 봉래 구곡을 대변하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제5곡 봉래곡을 경유한 푸른 물은 산 그림자를 머금고서 적당히 괴여 소를 이루는데, 이곳이 제6곡 금강소(金剛沼)이다. 내변산의 한복판 사자동 입구에 있는 직경 6m가량의 깊은 소로,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연못 속에서 찬란한 금빛이 난다고 하여 금광소(金光沼)라고 부르기도 한다. 제7곡 영지(影池)는 금강소 아래, 백천 삼거리 바로 위에 위치한다. 소가 매우 넓고 깊어 여름에 많은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겼던 곳이다. 이곳으로부터 10여 리 떨어진 쌍선봉(雙仙峰) 월명암(月明庵) 승려가 산등성이를 오르는 모습이 이 못에 비친다 하여 ‘영지’라 하였다고 한다. 맑은 물에 숲마저 우거진 명소가 지금은 부안댐에 잠겨 그 흔적이 사라졌다. 제7곡 영지를 달려온 물은 어수대와 창수동 계곡, 유동, 거석리, 청림, 가마소 계곡을 달려 구름도 쉬어 간다는 서운암(棲雲岩) 계곡 물줄기와 만나는데, 이곳이 바로 백 줄기의 물이 만난다는 제8곡 백천(百川)이다. 지금의 중계 다리 부근으로 이곳 또한 부안댐의 축조로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제9곡 암지(暗池)는 봉래 구곡의 마지막 곡이다. 잠두[누에머리, 누에가 머리를 들고 있는 형상. 천연기념물 제124호인 부안 중계리 꽝꽝나무군락 부근에 있다] 앞에 있었던 소로 부안댐이 축조된 후 물속에 잠겼다. 부안댐이 만들어지기 전, 암지를 경유한 물은 중계에서 새재골 물과 합쳐진 다음 군막동, 해창을 달려 서해로 빠졌다.

[의의와 평가]

김석곤은 일제의 한일 합병으로 나라를 잃게 되자, 뜻있는 선비들과 어울려 명산 대첩을 찾아다니며 자연을 즐기면서, 나라 잃은 설움을 나무나 바위 등에 독특한 서체로 글씨를 쓰고 새기면서 예술혼을 불태웠다. ‘봉래 구곡’은 김석곤이 이렇게 남긴 많은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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