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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531
한자 艮齋先生遺址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양지길 12[계화리 69]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최범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33년 - 계양사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74년 9월 27일연표보기 - 간재 선생 유지 전라북도 기념물 제23호 지정
현 소재지 간재 선생 유지 -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양지길 12[계화리 69]지도보기
성격 사당|유지(遺址)
양식 맞배지붕[계양사]|홑처마 팔작지붕[계화재]
관련 인물 전우
면적 648㎡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북도 기념물 제23호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계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성리학자 간재 전우가 학문을 연구하던 장소.

[개설]

간재 선생 유지(艮齋先生遺址)는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 전우(田愚)[1841~1922]가 학문을 연구하던 장소이다. 전우는 임헌회 문하(門下)에서 20년간 학문을 배웠으며, 1882년(고종 19)에 벼슬에 올랐으나 곧 사임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1910년(순종 4) 국권을 일본한테 강탈당하자 통분해 하며 계화도(界火島)에 들어가 도학(道學)으로 국권을 회복하고자 노력하였다.

[건립 경위]

전우는 일본에 의해 나라가 망해 가는 상황 속에서 유학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1908년(순종 2)에 왕등도(旺嶝島) 등 고군산 군도의 섬에 머물다가, 1910년 일본에 의해 강제로 나라를 빼앗겼다는 소식을 접하고 1912년 9월 계화도를 거처로 정하였다. 1922년에 생을 마칠 때까지 계화도에 머물면서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위치]

간재 선생 유지는 부안군 계화면 양지길 12[계화리 69번지] 일대에 있다.

[형태]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648㎡ 정도 되는 공간이다. 외삼문(外三門)과, 전우가 죽은 지 11년 뒤인 1933년에 제자들에 의해 세워진 사당 계양사(繼陽祠)가 있다. 계양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된 건물로, 간재의 초상화를 봉안하고 향사를 지내는 곳이다. 계양사 좌측에는 당시 강당으로 사용하였던 계화재(繼華齋)가 있다. 계화재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맞은편에는 간재 전우와 관련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유물관이 있다.

[현황]

간재 선생 유지전우계화도에 머물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거주하였던 곳이다. 강당으로 사용하였던 계화재와 맞은편의 유물관, 그리고 오른쪽으로 1933년에 제자들에 의해 건립된 계양사로 이루어져 있다. 1974년 9월 27일에 전라북도 기념물 제23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전우는 의병을 일으키지 않고 도학만을 이야기한다고 하여 지탄을 받기도 하였지만, 도학을 가르치며 항일 정신을 고취하여 이곳에서 제자들을 양성하면서 민족정기를 진작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참고문헌]
  • 『전북 문화재 대관』 -도 지정 편(상)(전라북도, 1997)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http://www.heritage.go.kr)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s://encykore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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