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5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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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磻溪先生遺蹟地 |
이칭/별칭 | 반계 유형원 선생 유적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반계로 97-68[우동리 산128-5]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범호 |
조성|건립 시기/일시 | 1654년 - 반계서당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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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74년 9월 27일 - 반계 선생 유적지 전라북도 기념물 제22호 지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1년 - 반계서당 복원 |
현 소재지 | 반계 선생 유적지 -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반계로 97-68[우동리 산128-5] |
성격 | 유적지 |
양식 | 겹처마 팔작지붕[반계서당] |
관련 인물 | 유형원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라북도 기념물 제22호 |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실학자 유형원의 유적지.
[개설]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1622~1673]은 17세기에 조선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론을 주창한 실학(實學)의 비조(鼻祖)이다. 32세 되던 1653년(효종 4) 한양에서 부안 우반동(愚磻洞)으로 이거하였다. 1670년(현종 11) 49세 때 『반계수록(磻溪隨錄)』을 완성하였으며, 3년 뒤인 1673년(현종 14)에 부안에서 52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부안군 보안면 우반동은 유형원이 20여 년을 살면서 토지 제도 개혁을 비롯하여 사회 개혁론을 집대성한 곳이다.
[건립 경위]
반계 선생 유적지(磻溪先生遺蹟地)는 조선 효종(孝宗)·현종(顯宗) 때 실학의 선구자 반계 유형원이 부안으로 낙향하여 학문에 정진하던 곳으로, 우반동으로 들어온 이듬해인 1654년(효종 5)에 반계서당이 건립되었다.
[위치]
반계 선생 유적지는 부안군 보안면 반계로 97-68[우동리 산128-5번지]에 있다.
[형태]
유형원의 실학자로서의 위상에 비해 부안 지역에 남아 있는 반계 관련 유적은 의외로 적다. 우반동에 유형원이 살았던 집자리와 직접 팠다는 우물이 전해지고 있으며, 산 중턱에는 반계서당이 안팎의 우물과 함께 복원되어 있다. 반계서당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1974년에 군민과 정부의 지원으로 반계 선생 유적비를 세웠다. 서당 옆에 유형원이 죽어 임시 안장한 자리에 묘역이 조성되어 있으며, 우반동 논가에는 직접 군사 훈련 시를 썼다는 돌기둥이 서 있다. 반계 선생 유적지에서 멀지 않은 부안군 상서면 가오리 동림마을 원촌에는 유형원을 모셨던 동림서원(東林書院)이 철폐된 채 유허비만 남아 있다.
[현황]
1974년 9월 27일에 전라북도 기념물 제22호로 지정되었다. 반계서당은 언제인가 무너져 자취만 남아 있다가 1981년에 66.12㎠[20평] 정도로 복원되었다. 건물 안과 밖에 각각 우물이 있는데, 이 우물도 유형원이 판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서당 아래에 있는 정자 반계정(磻溪亭)은 유적지를 복원하면서 세웠다. 2000년에 ‘반계 유적지 기본 정비 계획’이 수립되었고, 2020년 현재까지도 유적지 정비가 이루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