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5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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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榮泰妻平康蔡氏旌閭 |
이칭/별칭 | 평강 채씨 정려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 동진남로 160[내기리 198-3]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경성 |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동진면 내기리에 있는 개항기 정려.
[개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충효 사상과 정절을 으뜸으로 삼았다. 조정에서도 이를 적극 권장하여, 충효열(忠孝烈)에 뛰어난 사람을 뽑아 정려(旌閭)를 내려 백성의 귀감이 되게 하였다. 정려의 종류에는 정려비와 정려문, 정려각 등이 있다. 최영태 처 평강 채씨 정려(崔榮泰妻平康蔡氏旌閭)는 개항기에 전주 최씨(全州崔氏) 최영태(崔榮泰)의 처 평강 채씨(平康蔡氏)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채씨 부인은 본관이 평강(平康)으로, 전주 최씨 최영태의 부인이다. 채씨 부인은 출가한 이후로 행실이 어질고 시부모를 극진히 봉양하여 조금도 예절에 어긋남이 없었다. 또한 남편을 섬김에 있어서도 오직 예로써 섬기니 모두가 효부라 일컬었다.
중년에 가운이 불길하여 채씨 부인의 남편이 병석에 누워 위독하였는데, 채씨 부인이 자기의 손가락을 잘라서 그 피를 입에 넣어 주니 병중 환자의 정신이 돌아왔다. 남편이 부인을 보고 말하기를 “내가 형제도 없이 부모보다 먼저 떠난다는 것은 천지간에 용납할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니, 내가 죽은 뒤에 부모님을 모시는 일과 부모님의 뒤를 이을 일들의 일체를 그대에게 부탁한다” 하고는 세상을 떴다. 부인은 남편이 남긴 부탁 때문에 따라서 죽지 못하고 겨우 목숨을 보존하면서, 삼종제(三從弟)가 둘째 아들을 낳자 포대기째 안아서 집에 데려와 자기가 낳은 아들과 다름없이 정성을 다하여 길렀다. 고을에서 부인의 이와 같은 행실은 효열을 모두 겸한 것이라 칭송하고 조정에 글을 올리니, 1904년(고종 41)에 정려가 내려졌다. 최영태와 평강 채씨의 묘는 정려 바로 뒤에 있다.
[위치]
최영태 처 평강 채씨 정려는 부안군 동진면 동진남로 160[내기리 198-3번지 신리마을]에 있다. 부안군 부안읍에서 혜성병원을 지나 고마제 저수지로 가는 길을 따라 직진하면 K컨벤션웨딩홀 사거리가 나온다. 사거리에서 김제 방면으로 고마제로를 따라 직진하면 저수지 끝 부근에 로터리가 나오고, 로터리에서 9시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동진남로를 따라가면 옛맛촌 음식점이 나온다. 옛맛촌 음식점을 지나 고마제 저수지 제방을 타고 가면 양 갈림길이 나오는데,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400m 정도 가면 우측 도로변에 정려가 있다. 부부의 묘는 정려각 바로 뒤편에 있다.
[변천]
1904년에 정려를 받아 건립하였으며, 이후에 작은 수리를 하였다.
[형태]
도로에 면한 곳은 철제로 울타리를 만들었고, 나머지 삼면은 시멘트로 담장을 둘렀다. 정면 철제 울타리 오른쪽에 철제문을 달았다. 정려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길이는 정면이 232㎝이고 측면이 198㎝이다. 시멘트의 팔각 초석 위에 원형의 나무 기둥을 얹었다. 정면에 나무문을 달았으며, 나머지 3면은 아래쪽에 나무로 막았다. 정려각 안에는 ‘열녀학생최공영태지처평강채씨지려 광무팔년 십이월 일 명정(烈女學生崔公榮泰之妻平康蔡氏之閭 光武八年 十二月 日 命旌)’이라 쓴 현판이 있다. 정면의 문 앞에 비석이 있다.
[현황]
최영태 처 평강 채씨 정려는 전주 최씨 문중이 소유하여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