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5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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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壽換妻瀛州李氏孝烈碑 |
이칭/별칭 | 영주 이씨 열녀비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석신길 46-39[내요리 537-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경성 |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내요리에 있는 최수환의 처 영주 이씨의 효열을 기리기 위하여 1935년에 세운 비.
[개설]
최수환(崔壽換)[1841~1888]은 본관이 전주로, 최계성(崔繼成)의 11세손이며, 최수환 처 영주 이씨(瀛州李氏)는 이동엽(李東燁)의 딸이다.
[건립 경위]
영주 이씨(瀛州李氏)는 본래 성품이 얌전하고 효도를 잘하기로 친정에서부터 소문이 자자하였다. 시부모를 정성으로 모시고 가르침을 잘 받들어 실행하므로 어진 며느리라고 시부모들 또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시집간 지 얼마 안 되어 집안 형편이 기울어 가난한 가운데 남편이 병환을 얻어서 부득이 베를 짜고 길쌈을 하여 수년 동안 지극정성으로 약을 구하여 회생시켰다. 그러나 몇 해 후 남편이 다시 병이 나니 정화수(井華水)를 떠 놓고 치성을 드리며, 얼음을 깨고 물고기를 잡아 보양을 하는 등 정성을 다하여 다시 회생시켰다. 인근에서는 영주 이씨의 행실을 보고 열부라 칭송이 자자하였다.
얼마 후 남편이 다시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니 남편의 뒤를 좇아 죽으려 하다가 늙은 시어머니와 어린 자식을 생각하고 원통함을 달래며 열심히 살아 왔다. 그 후 시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자 정성을 다하여 상례를 치렀다. 이러한 영주 이씨의 효행과 열행이 인정되어 1935년에 최수환 처 영주 이씨 효열비(崔壽換妻瀛州李氏孝烈碑)가 건립되었다.
[위치]
부안읍에서 지방도 707호선을 따라 주산면 소재지로 가다가 부안남초등학교를 지나 로터리에서 직진하면 신흥 상회 앞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돌모산로를 따라 직진하여 내요 보건 진료소 앞을 지나면 ‘돌모산’이란 커다란 비석이 있는 삼거리에 도착한다.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200m 따라 직진하면 ‘석신’ 마을 표지석이 나온다. 이 표지석을 따라 우측으로 300m 직진하면 석신마을 모정이 나온다. 모정에서 우측으로 들어가 석신마을을 끼고 좌측으로 계속 가면 마을 끝 남쪽 모퉁이에 최수환 처 영주 이씨 효열비가 있다.
[형태]
시멘트 벽돌로 만든 담장이 둘러져 있으며, 정면에는 철제문이 있다. 정려비각은 담장 안에 있다. 바닥은 콘크리트로 처리하였다. 최수환 처 영주 이씨 효열비는 화강암의 기초 위에 두 개의 돌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에 현판을 끼웠다. 현판과 돌기둥 위에는 지붕 모양의 개석이 있다. 석판은 가로 77㎝, 세로 48㎝이다.
[금석문]
앞면에는 ‘전주최공수환지배 영주이씨효열문(全州崔公壽煥之配 瀛州李氏孝烈碑門)’이라 되어 있고, 뒷면에는 ‘영주이씨효열비(瀛州李氏孝烈碑)’라고 쓴 효열 내용이 있다. 석정려 석판은 규장각 부제학 이병관(李炳觀)이 글을 짓고, 비서원 승(祕書院丞) 김병흥(金炳興)이 글씨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