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4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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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道東書院址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연곡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유철 |
건립 시기/일시 | 1534년 - 도동서원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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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시기/일시 | 1868년 - 도동서원 훼철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9년 1월~10월 - 도동서원지 전주문화유산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실시 |
소재지 | 도동서원지 -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연곡리 |
성격 | 서원 터 |
소유자 | 부안 김씨 |
관리자 | 부안 김씨 |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연곡리에 있는 조선 시대 서원 터.
[개설]
도동서원(道東書院)은 고려 후기 유학자이자 정치가인 지포(止浦) 김구(金坵)[1211~1278]를 주벽으로 모셨으며 이후에 충선공(忠宣公) 김여우(金汝盂) 등 8명을 추가 배향하였다. 김구는 고려 말 성리학을 도입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유학자로 부안에 내려와 후학을 양성하면서 지역 사회에 문풍을 진작시키고 향촌 교화에 노력하였다.
[변천]
도동서원의 건립 연대는 1534년(중종 29)으로 알려져 있다. 도동서원을 창건하여 김구를 향사해 오다가 충선공 김여우, 고궁당(固窮堂) 최수손(崔秀孫), 청호(晴湖) 성중엄(成重淹), 처헌(處軒) 최필성(崔弼成), 옹천(甕泉) 김석홍(金錫弘), 충정공(忠正公) 화포(花圃) 홍익한(洪翼漢), 운강(雲江) 김계(金啓), 퇴우당(退憂堂) 김해(金垓) 등을 추가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 5)에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위치]
도동서원지(道東書院址)는 부안군 부안읍 연곡리 부안고등학교 뒤 학당 고개 너머에 있다. 부안 김씨 재실인 계경재[부안군 부안읍 연곡리 산34]에서 북서쪽으로 약 20m 정도 떨어진 석동산의 서남쪽 구릉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2019년 1월부터 10월까지 전주문화유산연구원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 조사를 통해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로서 6개의 주춧돌과 기단, 계단, 출입 시설, 담장 등이 확인되었으며 백자편과 ‘강희십일년(康熙十一年)’[1672년] 명의 명문와를 비롯한 다량의 기와가 출토되었다. 사당의 정면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반면에 측면은 중앙이 양 측면보다 넓은 형태를 띠고 있다. 주춧돌의 형태와 기단의 축조 방법을 볼 때 사당은 매우 품위 있는 건물로 판단되며, 주춧돌과 적심 아래로 또 다른 적심 흔적들이 확인되고 있어 몇 차례의 개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당의 외곽으로는 담장을 두르고 있는데 담장의 규모는 동서 12.1m, 남북 16.4m, 너비 80~100㎝ 내외이다. 사당의 남쪽에는 세 동의 건물지가 ㅁ자의 배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 일대는 발굴 조사 이전에는 밭으로 경작된 곳으로서 경작으로 인해 대부분 훼손되고 건물의 기단 일부와 적심이 남아 있는 정도이다. 1호 건물지는 가장 북쪽에 위치하는데 남북 1칸, 동서 2칸의 건물이며, 2호 건물지는 1호 건물지의 남서쪽에 자리하는데 남북 5칸, 동서 3칸으로 ㄴ자 형태이다. 3호 건물지는 2호 건물지의 동쪽 맞은편에 위치하는데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로서 아궁이와 고래 등 온돌 형태가 잘 남아 있다.
[현황]
도동서원지는 강학 공간과 향사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다. 강학 공간은 민가와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는데 조선 시대 기와편, 백자편, 분청사기편 등이 다수 산포되어 있다. 향사 공간으로 추정되는 사당 터는 기단석과 주춧돌 등이 노출되어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임이 확인된다. 건물지 내부에는 ‘도동서원 유허비(道東書院遺墟碑)’ 등 2기의 비석이 자리하고 있어 이 일대가 도동서원지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2019년에 이루어진 발굴 조사를 통해 사당지에서 건물 주춧돌과 적심, 기단, 담장, 출입문 등이 확인되었으며, 사당지의 남쪽 부분에서는 세 동의 건물지를 비롯하여 수혈(竪穴)과 아궁이 등의 부속 시설 등이 확인되었다.
[의의와 평가]
1542년에 건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으로 알려진 영주의 소수서원(紹修書院)보다 8년 앞서 건립된 것으로 전하는 서원으로 조선 전기 서원의 성격과 규모를 알 수 있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