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4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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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不思議方丈 |
이칭/별칭 | 불사의방장,다람쥐절터,다람이절터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산1-46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유철 |
소재지 | 부사의방장 -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산1-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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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절터|수행처 |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암반에 지어진 고승들의 수행처.
[개설]
부사의방장(不思議方丈)은 통일 신라 때 고승인 진표 율사(眞表律師)가 수행처로 삼았다고 하는 암자 터이다. 규모는 가로 5m, 세로 4m 정도로 진표 율사가 수행한 이후 많은 수도승들이 수행처로 삼았던 곳으로 전한다. 여기서 부사의(不思議)란 ‘보통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음’을 뜻하고, 방장은 ‘고승들이 거처하는 처소’를 뜻한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이 암자에 대해 “신라의 승려 진표 율사가 우거하던 곳인데 백 척[약 30m] 높이의 사다리가 있다.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면 방장에 이를 수가 있는데 그 아래는 측량할 수 없는 골짜기이다. 쇠줄로 그 집을 매어 바위에 못질을 하였는데 세상에서는 바다의 용이 한 짓이라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제23권 기, 「남행월일기(南行月日記)」에 이규보가 부사의방장을 찾아간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그 번역문의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또 이른바 ‘부사의방장(不思議方丈)’이란 것이 어디에 있는가를 물어서 구경하였는데, 그 높고 험함이 효공의 방장의 만 배였고 높이 1백 척쯤 되는 나무 사다리가 곧게 절벽에 걸쳐 있었다. 3면이 모두 위험한 골짜기라, 몸을 돌려 계단을 하나씩 딛고 내려와야만 방장에 이를 수가 있다. 한번만 헛디디면 다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나는 평소에 높이 한 길[약 2.4m]에 불과한 누대(樓臺)를 오를 때도 두통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정신이 아찔하여 굽어볼 수 없던 터인데, 이에 이르러는 더욱 다리가 와들와들 떨려 들어가기도 전에 머리가 벌써 빙 돈다. 그러나 예전부터 이 승적(勝跡)을 익히 들어오다가 이제 다행히 일부러 오게 되었는데, 만일 그 방장을 들어가 보지 못하고 또 진표 대사(眞表大士)의 상(像)을 뵙지 못한다면 뒤에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그래서 어정어정 기어 내려가는데, 발은 사다리 계단에 있으면서도 금방 떨어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드디어 들어가서 부싯돌을 쳐서 불을 만들어 향(香)을 피우고 율사(律師)의 진용(眞容)에 예배하였다. 율사는 이름이 진표(眞表)이며 벽골군(碧骨郡) 대정촌(大井村) 사람이다. [중략] 그 방장은 쇠줄로 바위에 박혀 있기 때문에 기울어지지 않는데, 세속에서 전하기를 바다 용이 그렇게 한 것이라 한다.”
[변천]
전하는 말에 의하면, 신라 때 진표 율사가 이곳에서 수행한 이후 많은 고승들이 수행처로 삼았다고 한다. 현재 이 암자 터를 ‘다람쥐절터’ 혹은 ‘다람이절터’라고도 부른다. 이렇게 부르는 것은 부사의방장에서 득도했다는 신라 승려 진표 율사의 행적에 대해 기록된 『삼국유사(三國遺事)』를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진표 율사가 명산을 찾아 다니면서 신사 27세 상원 원래 경자에 쌀 스무 말을 쪄 말려 양식으로 삼고 보안현을 찾아 변산의 부사의방장에 들어갔다. 5홉을 가지고 1일을 먹고 1홉을 떼어 쥐를 기르면서 미륵상 앞에서 몸소 계법을 구하였다’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쥐절터라고 부르게 된 것으로도 추정된다.
[위치]
변산반도의 최고봉인 의상봉 동쪽 절벽 중간에 자리한다. 의상봉 동쪽은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곳으로 절벽 아래는 낭떠러지이다. 이 절벽에서 아래로 밧줄을 타고 내려가면 편평한 암반이 자리하는데 이곳에 부사의방장을 짓고 암벽에 쇠말뚝을 박아 바람에 견디도록 하였다고 한다.
[현황]
현재 암자는 없고 그 터인 암반만이 노출되어 있다. 2m 정도 위의 암벽에는 암자를 고정시켰다는 굵은 쇠못이 박힌 흔적이 있다. 13㎡ 남짓한 반석 가장자리에는 나무 몇 그루가 자라고 있다. 주변에는 조선 시대의 기와편들이 흩어져 있다. 발굴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부사의방장 암반의 한쪽에는 가로 30㎝, 세로 25㎝, 깊이 10㎝ 정도의 사각형 모양의 홈이 파여 있어 암벽 틈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 자연스럽게 고이도록 되어 있다. 이곳은 접근이 쉽지 않은 상태여서 현재는 밧줄을 타고 내려가도록 되어 있다. 한편, 부사의방장에서 동쪽으로 이어진 산길로 90m 정도 진행하다가 암벽 사이로 내려가면 세 개의 동굴이 위치하며 이곳에서 서쪽으로 20m 떨어진 곳에는 자연 동굴이 자리하는데 의상 대사(義湘大師)와 원효 대사(元曉大師)가 수행한 곳이라고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