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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466
한자 來蘇寺浮屠殿
분야 종교/불교
유형 유적/탑과 부도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266-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미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내소사 부도전 -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266-1지도보기
성격 부도
관련 인물 혜구 두타|능파당(楞坡堂) 명철 선사|만허 선사|관해당(觀海堂)|해안당(海眼堂)
재질 석재
크기(높이) 242㎝[부도1]|156.5㎝[부도2]|154㎝[부도3]|137.5㎝[부도4]
소유자 대한불교조계종 내소사
관리자 대한불교조계종 내소사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내소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부도.

[개설]

내소사(來蘇寺)는 633년(무왕 34)에 혜구 두타(惠丘頭陀)가 창건한 절로, 처음에는 소래사(蘇來寺)라 하였다가 내소사로 바꾸었다. 이름을 바꾼 까닭은 확실하지 않으며 그 시기만 임진왜란 이후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내소사 일원(來蘇寺一圓)은 전라북도 기념물 제7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경내에는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扶安來蘇寺大雄寶殿)[보물 제291호]과 요사채인 설선당(設禪堂)[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125호], 보종각, 봉래루(蓬萊樓), 고려 시대에 제작된 부안 내소사 동종(扶安來蘇寺銅鍾)[보물 제277호]과 내소사 삼층 석탑(來蘇寺三層石塔)[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124호] 등이 있다. 내소사 부도전인 승탑원은 내소사 진입로인 전나무길이 끝나는 지점에 위치하는데, 내소사 경내에서 서남쪽으로 다소 떨어져 있다. 승탑원은 현재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 않은 비지정 문화재이다. 부도전에는 승려들의 승탑과 비석이 자리하는데, 주인공을 알 수 없는 조선 후기의 승탑 4기와 주인공을 알 수 있는 근현대의 승탑 4기, 그리고 비석이 4기 세워져 있다.

관해당(觀海堂) 인주(仁舟)는 만허당(滿虛堂)의 은사로, 조사당에 영정이 있다. 1911년에 ‘벽안당(碧眼堂)’[지금의 관심당]이라는 선실을 건립하였다. 만허당 경화(慶華)[1856~1935]는 내소사의 중흥에 노력하였으며, 조사당에 영정이 있다. 능파당(楞坡堂) 명철(明喆)은 만허의 문도이며, 1941년에 삼성각을 건립하였다. 해안당(海眼堂) 봉수(鳳秀)[1901~1974]는 만허의 문도이며, 조사당에 영정이 있다. 내소사 능가산중흥법주만허선사비(來蘇寺楞伽山中興法主滿虛禪師碑)와 능파당명철선사공덕비를 세웠다. 1960년에 삼성각의 칠성탱, 독성탱, 산신탱을 모셨다. 우암당(愚岩堂) 혜산(彗山)[1933~2005]은 1982년에 설선당을 보수하고 1983년에 보종각을 이건하였다. 1985년에 현재 회주실로 사용하는 벽안당을 ‘관심당’이라 편액하였고, 1986년에 천왕문을 신축하였으며 1986년에 삼성각을 보수하였다. 1987년에 봉래루를 중창하였고, 1988년에는 진화사(眞華舍)를 옛터에 건립하고 한주실(閑主室)로 이용하였다. 1990년에 무설당을 옛터에 복원하였고, 1993년에 삼성각을 보수하고 1999년에 화래원을 건립하였다.

[건립 경위]

내소사 부도전내소사가 창건된 이후부터 조성된 것으로, 내소사 거주 승려들이 열반한 후 이들의 승탑을 봉안하는 공간으로 건립되었다.

[위치]

내소사 부도전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내소사 진입로를 따라 들어가다 보면, 봉래루에 못 미쳐 길 왼편의 승탑원에 있다. 승탑원은 내소사 서쪽에 남북 방향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의 동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형태]

조선 시대 후기에 조성된 부도 4기의 형태 및 특징은 다음과 같다. 부도1은 탑신이 원구형이며 팔각의 옥개석을 얹었다. 지대석은 자연석을 사용하고 있으며, 하대석에는 복련을, 상대석에는 앙련을 조각하였다. 옥개석 받침은 3단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옥개의 길이가 짧아 옥개석의 전체적인 모습이 뭉툭하게 처리되어 매우 특이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옥개석은 일부분이 깨져 있으며, 옥개석 위에 얹어 있는 보주는 별석으로 처리하였다. 부도의 규모는 전체 높이가 242㎝, 탑신 폭이 46㎝이다. 부도2는 탑신이 원구형이며, 잘 다듬어진 방형의 지대석 위에 복련이 새겨진 팔각형의 연화 대좌를 얹고 있다. 옥개석은 팔각이지만 각이 크지 않고 기울기는 급격하여 원형의 초가지붕을 연상시킨다. 자연석의 보주는 후대에 얹은 것으로 보이며 시멘트로 고정해 놓았다. 조선 후기 원구형 부도 형식으로 규모는 전체 높이가 156.5㎝, 탑신 폭이 57㎝이다. 부도3은 탑신이 사각형이고 옥개석은 팔각을 이루고 있다. 전형적인 조선 후기 팔각 원당형 부도로 옥개석 위에 얹은 상륜부는 복발, 보륜, 보주가 일석으로 표현되어 있다. 규모는 전체 높이가 154㎝, 탑신 폭이 51㎝이다. 부도4는 탑신이 원구형이고 옥개석은 방형이다. 조선 후기 원구형 부도로 규모는 전체 높이가 137.5㎝, 탑신 폭이 48㎝이다.

[금석문]

부도에 ‘능파당’, ‘만허당’, ‘관해당’, ‘해안당’이 새겨 있고, 비석 4기에도 비문이 새겨져 있다. 비석의 앞면에 새겨진 비문은 각각 ‘우암당혜산대선사비(愚岩堂慧山大禪師碑)’, ‘능파당명철선사지공덕비(楞坡堂明喆禪師之功德碑)’, ‘능가산중흥법주만허선사비(楞伽山中興法主滿虛禪師碑)’, ‘해안범부지비(海眼凡夫之碑)’이다. 능가산증흥법주만허선사비의 비문은 만허 선사의 상좌였던 승려 해안의 「만허 선사 약전」을 바탕으로 승려 석전이 작성하였으며, 글씨는 위창 오세창이 전각하였다. 승려 해안의 비석인 해안범부지비의 비문은 승려 탄허가 작성하였다. 뒷면에 ‘생사어시 시무생사(生死於是是無生死)’라고 음각되어 있다.

[현황]

내소사 승탑원에는 만허선사비를 비롯한 4기의 비석과 10기의 부도, 그리고 탑신부가 사라지고 지대석만 남은 부도 1기 등 모두 15기의 성물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지대석만 남은 부도의 석부재는 팔각으로 현재 두 쪽으로 쪼개져 있다. 부도전에는 10기의 부도가 동쪽을 정면으로 하여 모두 3열을 이루는데, 1열은 앞쪽 열이고 2열은 중간 열이며 3열은 뒤쪽 열이다. 1열에 있는 5기와 2열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부도 1기[모두 6기]는 당대 승려의 부도로, 명문이 있어 어떤 승려의 부도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그러나 3열인 뒤쪽 열에 있는 4기의 부도는 명문이 없어 주인공을 알 수 없다. 또한 탑신부는 없어지고[내소사 승려의 전언에 따르면 1990년대에 도난당하였다고 함] 기단만 남은 부도 또한 조성 시기를 알 수 없다. 문화재로서의 의의와 가치를 지닌 것은 뒤쪽 열에 자리한 4기의 부도이다. 앞 열의 부도는 왼쪽으로부터 능파당·만허당·관해당(觀海堂)·해안당(海眼堂)이다. 모두 근래에 조성한 부도들로 능파당은 1941년에 내소사 삼성각을 건립한 승려로서 승려 만허의 문도인 명철 선사이고, 만허당내소사 중흥조인 만허 선사이다. 관해당은 만허 선사의 은사이고, 해안당은 만허 선사의 제자이다. 부도전은 최근의 불사를 통하여 정비되었다.

[의의와 평가]

내소사 부도전은 조선 후기에 조성되었다. 부도전에는 부도 이외에도 4기의 비가 건립되어 있는데, 그중 1944년에 건립된 만허선사비는 근대 내소사의 중창과 관련한 중요한 자료를 담고 있다. 만허선사비의 비문은 석전 박한영이 작성하였으며, 글씨는 위창 오세창이 전각하였다. 또한 해안의 비문은 탄허가 작성하였다. 이처럼 내소사 부도전에 자리한 부도와 비는 조선 후기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시대상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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