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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446
한자 富谷里土城
이칭/별칭 성메산 산성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성산길 66-8[부곡리 산13-7]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강원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부곡리 토성 -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성산길 66-8[부곡리 산13-7]지도보기
성격 토성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부곡리 성메산에 있는 삼국 시대~고려 시대 토성.

[개설]

부곡리 토성(富谷里土城)은 해발 74m의 성메산 정상부와 북서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를 감싸고 있다. 삼국 시대~고려 시대의 토성으로 추정된다. 편축(片築)을 한 동쪽 성벽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은 협축(夾築) 방식으로 토루(土壘)를 쌓은 산성이다.

[건립 경위]

부곡리 토성이 자리하고 있는 옛 보안현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백제의 흔량매현(欣良買縣)이다. 신라에서 희안(喜安)으로 고치고 고부(古阜)에 속하게 하였다. 고려(高麗)에서 보안(保安)으로 바꾸었다[百濟 欣良買縣, 新羅改喜安 屬古阜, 高麗改保安]”고 기록되어 있어 고려 시대 초기에 보안현으로 개명된 것으로 보인다. 또 『문헌비고(文獻備考)』에서 “보안현은 고부에 속하였다가 후에 나누어 부령현 감무가 [겸임하였으며] 신우 때에 보안현 [감무를] 두었다[保安縣 入古阜 後析爲扶寜縣監務 辛禑置保安縣]"라고 하여 고려 시대 말 우왕(禑王) 때 줄포만 고현리에 옮기면서 보안현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두 문헌에서는 각각 고려 초기와 말기의 상황을 기록하고 있으나, 부곡리 토성은 삼국 시대 흔량매현의 치소지(治所址)였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후 고려 시대에 보안으로 고쳐진 이후에도 토성을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부곡리 토성부안군 보안면 부곡리 성산마을의 성메산에 있다. 부안군 주산면 소재지에서 줄포 방면의 지방도 제707호선을 따라 6㎞ 정도 가면 판곡 사거리가 나온다. 판곡 사거리에서 동쪽으로 꺾어 보안로를 따라 1㎞ 정도 가면 서해안 고속 도로 밑으로 통과하는 지하 터널이 있는데, 터널을 지나 바로 왼쪽으로 500여 m 가면 성산마을에 도착한다. 부곡리 토성은 성산마을의 북서쪽 성메산 정상부 주위에 둘러져 있다. 지금은 수풀이 우거져서 진입하기 어렵다.

[형태]

해발 74m의 성메산 정상부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리는 두 갈래의 능선을 따라가다가 두 능선 사이를 가로막은 삼태기형의 평면 형태를 보이고 있다.

[현황]

성 내부인 성메산 최정상부에는 돈대(墩臺)가 형성되어 있는데, 성 내부를 두루 살필 수 있어 당시 지휘소의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돈대는 타원형의 단을 형성하고 있는데, 둘레는 144.5m이고 높이는 약 3m이다. 성벽은 경사면 위에 토루를 협축하였다. 『고적 조사 자료』에 “토축이며, 둘레는 약 300간, 높이는 8척이다[土築 周約300間 高8尺]”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300간을 지금의 미터[m]로 환산하면 약 545m 정도로 근래 실측치인 564.8m와 거의 비슷한 규모를 보이고 있다. 문 터는 남문 터와 동문 터가 확인되었는데, 남쪽 성벽 중앙에서 서쪽으로 치우친 곳에 남문 터가 있고 동쪽 성벽 중앙의 수구지 남쪽에 동문 터가 있다. 동문 터 측벽의 높이는 약 2.6m이다. 한편, 부곡리 토성의 북서쪽과 인접하여 있는 서해안 고속 도로 건설 구간에는 1999년에 조사된 부곡리Ⅱ 유적이 있다. 이 유적에서는 원삼국 시대의 주거지와 토기 가마 등이 조사된 바 있다.

[의의와 평가]

부곡리 토성에서 동쪽으로 6㎞ 정도 떨어진 곳에 정읍 고사부리성(井邑古沙夫里城)이 자리하고 있고, 정읍 고사부리성에 못미쳐 동쪽으로 3.2㎞ 지점에는 고부천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고 있다. 고부천을 통해 북쪽의 동진만과 남쪽의 줄포만을 잇는 지리적인 요충지에 부곡리 토성이 자리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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