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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433
한자 扶安白山城
이칭/별칭 백산토성,백산성지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 용계리 산8-1
시대 고대/초기 국가 시대,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강원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8년 9월 17일연표보기 - 부안 백산성 사적 제409호 지정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8년 - 부안 백산성 전북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2008]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9년 - 부안 백산성 전북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2009]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10년 - 부안 백산성 전북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2010]
현 소재지 부안 백산성 - 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 용계리 산8-1지도보기
성격 산성
양식 퇴뫼식 산성
크기(높이,길이,둘레) 둘레 1,064m
문화재 지정 번호 사적 제409호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 용계리 백산에 있는 원삼국 시대~삼국 시대 산성.

[개설]

부안 백산성(扶安白山城)은 해발 47.4m의 백산(白山) 정상부를 중심으로 여러 겹의 환호 시설을 한 원삼국 시대~삼국 시대의 산성이다.

[건립 경위]

부안 백산성에 대한 직접적인 문헌 기록은 없지만 『일본서기(日本書紀)』「천지기(天智紀)」에 “부여풍(扶餘豊)이 백촌(白村)에 가서 일본의 구원군을 맞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여기서 백촌을 ‘백산’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또한 이곳은 1894년(고종 31) 동학 농민 혁명(東學農民革命) 당시 동학군이 처음으로 혁명의 기치(旗幟)를 들었던 백산기포(白山起泡)의 유적으로, 동학군이 전략상 공수(攻守)에 유리한 백산에 본진(本陣)을 옮겨 사용하였다. 당시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서 농민이 일어나면 흰 옷으로 덮히고, 앉으면 손에 쥔 죽창이 가득하다고 하여 ‘서면 백산, 앉으면 죽산’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고 한다. 1965년 지표 조사에서는 상성과 외성의 형태를 한 토성으로 보고되면서 민무늬 토기를 비롯하여 백제 시대 토기 편 등의 유물이 채집된 바 있다. 그러나 최근의 발굴 조사를 통해 토성보다는 환호와 같은 방어 시설을 한 산성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위치]

부안 백산성부안군 백산면 용계리 용계마을백산에 있다. 정읍시 신태인읍과 부안군을 잇는 국도 제29호선국도 30호선을 따라 부안 방면으로 가다 보면 동진강(東津江)을 건너는 군포교가 나오고, 군포교를 지나면 백산 교차로가 나온다. 백산 교차로에서 북쪽으로 400여 m 지점에 부안 백산성 입구가 있다. 부안 백산성 입구에서 산성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 170여 m 가면 평탄지가 나오는데, 평탄지의 서쪽에는 동학 혁명 창의비와 팔각정이 세워져 있다. 부안 백산성동진강 서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으로 넓은 평야가 발달되어 있어 산은 높지 않지만 광활한 주위를 조망할 수 있다.

[형태]

백산성의 형태는 1960년대에 조사되고 2003년에 발행된 『전북 고대 산성 조사 보고서』에 “산상을 평탄하게 다듬은 산상 대지로서 장축이 동남 135° 방향의 누에고치형이다. 최대 폭 25m, 길이 80m, 둘레 181.5m, 높이 약 3m의 토단(土壇)을 내려서서 테머리식으로 감았고, 장축 길이는 120m, 최대 폭은 60m이다. 이 아래 다시 테머리식으로 두른 중성이 있으며 둘레는 506m에 이른다. 남쪽 구릉을 감은 토성에 이어지는 남변은 토단이 애매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최근의 발굴 조사를 통해 백산의 정상부를 4중으로 감싸고 있는 환호 시설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부안 백산성백산의 정상부를 감싸 축조한 퇴뫼식 산성으로서, 평면은 길쭉한 타원형의 형태를 띤다.

[현황]

부안 백산성이 자리하고 있는 백산은 해발 47.4m 정도로 낮은 산상을 이루고 있지만, 주변이 평야 지대로 둘러싸여 있어 상대적으로 우뚝 솟아 보인다. 부안 백산성은 정상부 주위를 두른 퇴뫼식의 산성으로 성의 둘레는 1,064m, 장축은 358m, 폭은 230m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세 차례의 발굴 조사를 통해 청동기 시대 주혈(柱穴)과 유물 포함층, 원삼국 시대 주거지 19기, 원삼국 시대~삼국 시대의 환호 4기 등이 조사되었다. 유물은 구석기 시대의 격지 편과 청동기 시대의 민무늬 토기 편, 초기 철기 시대의 덧띠 토기[점토대 토기] 편, 원삼국 시대의 연질 파수(把手) 편, 시루 편 등이 출토되었다. 주거지에서는 발과 완, 주구 토기(注口土器), 호, 장란형 토기, 옹, 시루 등이 출토되었고, 환호 내부에서는 접시와 두형 토기 편 등이 출토되었다. 주거지는 평면 형태가 원형과 말각 방형, [장]방형으로 다양하며, 주거지 내부 시설로는 기둥 구멍과 벽구(壁溝) 등이 확인되었다. 환호는 산성의 서남쪽에서 조사되었는데, 4개의 환호가 겹겹이 둘러진 양상을 띠고 있다. 환호는 단면 ‘U’ 자형으로 너비는 0.8m~6.6m, 깊이는 0.5m~0.67m이다.

지금까지 부안 백산성에서는 주거지와 환호가 조사되었다. 환호는 석성(石城)이나 토성이 출현하기 이전의 원시적인 방어 시설로 초기 정치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정상부에 조성된 주거지를 감싸고 있는 구조로 보아 주거지의 배수(排水)와 수마(水魔)에 대한 보호, 그리고 외부 세력에 대한 방어의 목적으로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부안 백산성동학 농민 혁명의 ‘백산 기포’ 현장으로 역사성이 있는 전적지로 인정받아 1998년 9월 17일에 사적 제409호로 지정된 곳이면서, 구석기 시대의 유물 포함층을 비롯하여 청동기 시대의 주혈, 원삼국 시대~삼국 시대의 환호와 주거지 등이 확인된 산성 유적이다. 이처럼 선사 시대부터 역사 시대까지 누누이 사람들이 살면서 남긴 생활 유적과 방어 유적이 복합된 중요한 유적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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