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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399
한자 來蘇寺木造阿彌陀三尊佛座像
분야 종교/불교
유형 유물/불상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내소사로 243[석포리 268]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진정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장처 내소사 -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내소사로 243[석포리 268]지도보기
성격 불상
재질 나무
크기(높이) 125㎝
관리자 내소사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내소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목조 아미타 삼존불.

[개설]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扶安來蘇寺大雄寶殿)에는 설법인(說法印)을 취하고 있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본존으로 좌우에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과 관음보살(觀音菩薩)로 이루어진 목조 아미타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그런데 최근에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본존불(本尊佛)의 오른손 수인(手印)이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으로 바뀌고, 좌우 협시 보살(脇侍菩薩)이 연꽃 가지를 쥐고 있다. 내소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來蘇寺木造阿彌陀三尊佛座像)에서는 조성 발원문이 나오지 않아 명확한 조성 시기나 제작자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조선 후기 불상의 전형적인 특징인, 몸에 비해 큰 머리와 움츠린 듯한 어깨, 숙인 머리 등의 형태를 보인다.

[형태]

높이는 125㎝이다.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좌우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설법인을 취하고 있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배치하였다. 본존불인 아미타불 얼굴은 조선 후기 불상의 전형적인 형태인 사각형이며,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고 턱이 두드러져 있다. 머리는 신체에 비해 큰 편이며, 중앙 계주와 정상 계주가 모두 표현되어 있는데, 머리 정상부에는 정상 계주만 돌출되었다. 어깨는 당당하지만, 머리의 크기가 커 넓어 보이지 않는다. 설법인을 맺은 양손은 거의 발 위에 닿을 정도로 낮은 쪽에 위치한다. 왼쪽 어깨 위에는 둥근 옷 주름이 중첩되어 있다. 대의(大衣) 안에 입은 승지기 상단에는 여러 겹으로 접힌 옷 주름이 새겨져 있다.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두 다리 중앙에서 양 무릎 쪽으로 넓게 3단의 옷 주름이 층을 이루며 새겨져 있다. 두 다리 사이에는 좌우 대칭으로 옷자락이 펼쳐져 있는데, 특히 왼쪽 무릎 위에는 남은 옷자락이 ‘Ω’ 형태로 올려져 있다.

좌우 보살상은 화려한 보관을 썼을 뿐 본존불과 거의 같은 수법을 보인다. 다만, 그 크기가 본존불에 비해 10㎝ 정도 작다. 또 무릎 위에 올린 손은 맨살을 드러낸 본존불과 달리 대의 자락이 한 번 감싸고 있으며, 승지기 상단 옷 주름이 좀 더 자연스럽고 양다리에서 무릎 쪽으로 새겨진 옷주름이 촘촘하다. 좌우 보살이 한 손을 들고 한 손은 무릎 위에 올린 점은 본존불과 다르다.

[특징]

내소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은 조성 발원문이 없어 제작자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러나 턱을 도드라지게 표현한 점이나 머리의 정상부가 둥근 형태를 보이는 점, 그리고 승지기 상단 옷 주름이 많이 접혀 있는 모습이나 양다리의 가로 선, 왼쪽 무릎 위의 옷자락 등을 보면, 1641년(인조 19)에 제작되어 완주 송광사 대웅전(完州松廣寺大雄殿)에 봉안되어 있는 소조 석가 삼방불 좌상과 매우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완주 송광사 소조상을 조성한 청헌(淸憲) 또는 청헌의 제자가 내소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을 조성하였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청헌이 수조각승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시기가 1630년(인조 8)대 후반인 점으로 보아, 사적기에 내소사 대웅보전을 조성한 시기로 언급된 1633년(인조 11)보다 조금 늦은 시기에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의의와 평가]

유례가 드물게 대웅보전에 봉안되어 있는 내소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은 조선 후기 신앙의 일면을 잘 보여 준다. 이뿐만 아니라, 조성 발원문은 없지만 17세기 전반 전라도·충청도·경상도 등 삼남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던 현진(玄眞)과 청헌의 일파가 조성한 불상으로서 조선 후기 불상 양식과 조각승의 계보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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