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3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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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使行路 |
영어공식명칭 | Sahaeng road |
이칭/별칭 | 사신로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이선아 |
[정의]
고려 전기 고려와 송나라의 사신이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을 거쳐 왕래하던 교통로.
[개설]
고려가 건국될 즈음인 916년 거란이 요(遼)를 건국하고, 5대 10국의 분열을 종식한 송(宋)이 960년(광종 11) 중국을 통일하며 동북아시아의 국제 질서가 재편되었다. 고려는 개방적인 정책을 추진하여 주변 국가와 활발하게 교류하였다. 특히 고려는 송나라와의 외교와 무역을 중시하였는데 사신이나 학자, 승려 등을 보내 송의 선진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고려와 송을 이어 주는 길]
고려는 송과 교류할 때 산둥반도와 대동강 또는 예성강으로 이어지는 북로와 명주에서 흑산도-군산도-마도-자연도를 경유하여 예성강으로 이어지는 남로를 이용하였다. 그러나 거란의 세력이 확장한 이후에는 주로 남로, 바닷길을 이용하였다. 고려와 송의 바닷길은 1123년(인종 1) 고려에 사신으로 파견된 서긍이 편찬한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일명 『고려도경(高麗圖經)』]의 해도(海道)에 기록된 항로이다. 서긍은 송의 수도를 출발하여 개경에 이르는 경로를 상세하게 기록하였는데, 대략적으로 보면 중국의 절강성 영파에서 출발하여 흑산도-낙월도-위도-식도-군산도를 경유하여 황해의 연안을 따라 북상하여 예성강에 도착하였다.
[사행로에 자리한 위도]
고려와 송의 사신이 경유하는 섬에는 사신을 맞이하기 위한 객관(客館)이 설치되어 있었다. 객관은 외국의 사신을 위해 설치한 기관으로, 중국 황제의 조서를 봉안하는 의례를 비롯하여 사신을 맞이하는 연회 등이 이루어졌다. 『선화봉사고려도경』에 따르면, 서긍은 군산도의 군산정, 자연도의 경원정, 마도의 안흥정, 예성항의 벽란정, 개경 근교의 서교정을 거쳐 마지막 개경의 순천관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서긍은 군산도에 이르기 전에 1123년 6월 5일 위도에 도착하여 하루 머물고 갔다. 『선화봉사고려도경』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5일 병술. 날씨가 청명하였는데 고섬섬(苦苫苫)을 지나갔다. 죽도에서 멀지 않고 그 산이 유사한데 역시 주민이 있었다. 고려의 습속으로는 자위모(刺蝟毛)를 ‘고섬섬’이라고 한다. 이 산의 나무들은 무성하나 크지 않아 바로 고슴도치 털 같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 지은 것이다. 이날 이 섬에 정박하니 고려인들이 배로 물을 싣고 와 바치니 쌀로 사례하였다. 동풍이 크게 일어 전진할 수 없어서 결국 여기서 묵었다.”
서긍은 ‘고섬섬’이라는 말에 대해 ‘자위모’, 즉 ‘고슴도치의 털’이라고 풀이하였는데, 아마도 ‘고섬(苦苫)’은 고슴도치를 가리키고 맨 뒤의 섬(苫)은 우리말 ‘섬[島]’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고슴[도치]섬’으로 불리는 섬을 한자로 ‘위도(蝟島)’라고 표기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