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2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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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扶安邑誌 |
영어공식명칭 | Buaneupj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최진성 |
[정의]
1877년경 편찬된 전라도 부안현의 지리 정보들을 모은 읍지.
[편찬/간행 경위]
『부안읍지(扶安邑誌)』[想白古 915.14-B85]는 1877년(고종 14)에 작성되었다. 항목 구성으로 보아 1788년~1796년에 이루어진 전국 지리지 『해동여지통재(海東輿地通載)』 편찬 작업의 일환으로 작성된 읍지를 토대로 하여, 일부 내용을 당시의 사정에 맞게 수정 보완한 것으로 보인다. 첨부된 지도는 1877년경 본 읍지 편찬 당시에 그린 것이다.
[형태/서지]
1책 19장의 필사본으로, 크기는 35.5×23.2㎝이다. 채색 지도가 포함되어 있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부안읍지』는 항목을 설정하여 고을 사정을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1877년 당시의 정보로 수정되거나 보완된 것은 향현사(鄕賢祠), 진보(鎭堡), 상납, 호구, 군액, 선생안 등의 항목이다. 향현사 항목에는 ‘조령(朝令)으로 인해 모두 훼철되었다.’라고 하여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인해 향현사가 모두 없어졌음을 기록하였다. 진보 항목은 1873년 격포진을 다시 설치하고, 검모포진을 혁파한 사실을 반영하였다. 호구는 4,604호로 크게 줄어든 수치인데 1877년 당시의 정보로 보인다. 군액도 새로 설치된 격포진(格浦鎭)의 모군(募軍)이 들어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의 정보로 보인다. 선생안은 1877년 부임한 부안현감 정진묵(鄭晉黙)까지 기록하였다. 첨부된 채색 지도에는 산천, 도로를 표시하고, 읍치와 각 면을 표시하였다. 읍치는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관아 건물도 그려져 있다. 그 밖에 도로와 연결된 평교(平橋) 등 교량, 실상사(實相寺) 등 사찰, 위도진(蝟島鎭)·격포진 등 진보(鎭堡)가 표시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부안읍지』에 의하면, 부안현은 현재의 행정 구역으로는 전라북도 부안군 지역에 해당하는데, 백산면은 당시 부안현에 속하지 않고 고부군에 속하였다. 부안현 지역은 백제 때는 개화현(皆火縣)과 흔량매현(欣良買縣)이 자리하였다. 개화현은 신라에서 부령현(扶寧縣)으로 이름이 바뀌고, 흔량매현(欣良買縣)은 신라에서 희안(喜安)으로, 고려에서 보안현(保安縣)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 두 현을 합하였고 1416년(태종 16) 부안으로 고을 이름을 정하였다. 또한 읍치는 부안읍의 서외리, 동중리 일대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