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262 |
---|---|
한자 | 東津江導水路事業 |
영어공식명칭 | Dongjingang River Conduit Project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주산면|상서면|하서면|부안읍|행안면|동진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성욱 |
[정의]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에 있는 칠보 발전소에서 부안군 계화 간척지까지 수로를 건설하여 농업용수를 공급한 사업.
[개설]
동진강(東津江)은 호남평야의 넓은 농토에 비해 공급할 수량이 부족하였는데, 동진강의 수자원 확충을 위하여 노령산맥의 반대쪽인 섬진강의 물을 유역 변경에 의해서 끌어 들여 동진강 유역과 김제 광활 간척지, 부안 계화 간척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한 사업이다. 1969년 8월 6일 동진강 수리 간척 사업의 준공을 기념하는 통수식을 개최하였다.
[동진강]
전라북도는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이어지는 노령산맥[진안군~임실군~순창군]을 경계로 동부의 산간 지대와 서부의 평야 지대로 구분된다. 동부 산간 지대는 다시 북쪽의 금강 수역[진안군, 장수군, 무주군]과 남쪽의 섬진강 수역[임실군, 남원시, 순창군]으로 구분되며, 서부 평야 지대는 북쪽의 만경강 수역[전주시, 완주군, 익산시, 군산시, 김제시]과 남쪽의 동진강 수역[김제시, 정읍시, 부안군] 등 4개 지역으로 구분된다.
이 중 동진강은 전라북도 서부 평야 지대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면서 호남평야 남부 지역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호남평야의 젖줄 역할을 하고 있다.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을 촉발한 조병갑(趙秉甲)의 만석보(萬石洑)도 정읍천과 동진강이 만나는 지점에 축조되었다. ‘동진강’이라는 이름은 김제와 부안을 연결하는 나루터인 부안의 동진(東津)에서 유래하였는데, 현재 부안군 동진면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에 부안군의 상동면, 일도면, 이도면을 통합하여 과거 동진원(東津院)이 있던 곳이기 때문에 이러한 면 이름이 붙었다.
동진강의 발원지에 대한 논의는 다양한데, 먼저 하천의 길이로 봐서는 정읍시 내장산 까치봉[717m] 까치샘에서 시작되는 정읍천이 51.0㎞로 가장 길다. 그러나 현재의 수량으로 봐서는 정읍시 산외면 목욕리 촛대봉[369m]에서 시작되는 물길[44.7㎞]이 주를 이룬다. 촛대봉에서 시작된 물은 팽나무정마을에서 흘러오는 물[섬진강]과 합류하고[평사리천], 북쪽의 상두산[575m]과 엄재에서 시작된 상두천, 옹동면에서 시작되는 용호천, 내장산 까치봉에서 시작되는 정읍천, 고창군 신림면에서 시작되는 고부천, 김제시 금산면에서 시작되는 원평천을 합류하여 김제시 광활면과 부안군 동진면 사이를 흘러 서해로 유입된다.
동진강은 정읍과 김제의 호남평야를 흐르는 하천이지만 만조 시에는 현재의 정읍시 신태인읍까지 바닷물이 밀려오는 감조 하천(感潮河川)이기 때문에 동진강 본류는 농업용수로 사용할 수 없었다[해발 고도 약 4m까지]. 삼국 시대에 동진강의 지류인 김제 원평천에 축조된 벽골제와 정읍 고부천에 축조된 눌제는 바닷물을 막고 담수를 확보하는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였다. 따라서 동진강의 본류인 정읍시 신태인읍 이후의 서쪽 하류는 농업용수로서의 역할을 하지는 못하였고, 지류가 그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동진강은 하천이 길지 않아 호남평야의 넒은 지역에 물을 공급하기에는 수량이 부족하였다.
[동진강 도수로 사업]
1920년대 일제의 산미 증산 계획과 함께 동진수리조합(東津水利組合)이 결성되었고[1925년], 동진강 주변의 홍수를 방지하고 농경지 확보를 위한 하천의 직선화 공사[1924~1940년]가 이루어졌다. 동시에 동진강의 수자원 확보를 위하여 노령산맥의 반대쪽인 섬진강의 물을 끌어 들이는 공사를 하였다. 즉, 섬진강 상류에 높이 33m의 운암제[임실군 강진면 옥정리]를 축조하고, 임실군 운암면 운정리 굴등마을에서 노령산맥을 통과하는 759m의 지하 터널을 뚫어 서쪽의 정읍시 산외면 종산리 팽나무정마을로 섬진강의 물을 끌어 들였다.
1931년에는 제2도수 터널을 만들어 정읍시 산외면 종산리에 유효 낙차 77.02m를 이용하는 수력 발전소인 운암 발전소를 만들어 개시하였고 1985년에 폐쇄하였다. 수력 발전으로 이용한 물은 동진강[평사리천]으로 방출하여 농업용수로 공급하였다. 1945년에는 정읍시 산내면 장금리에서 칠보면 시산리까지 6.2㎞의 칠보 터널을 뚫어 유역 변경식 발전소인 칠보 발전소[일명 섬진강 수력 발전소]도 만들었다. 그리고 1965년에는 운암제 하류 2.4㎞ 지점에 국내 최초의 다목적 댐인 섬진강 댐을 만들어 더 많은 수량[운암제의 7배인 4억 6600만 톤]을 확보하였다.
산간 지역을 흘러 수량이 풍부한 섬진강에서 서쪽의 동진강에 유입된 물은 식수와 발전용으로도 이용되었으나, 주목적은 호남평야의 농업용수 공급이었다. 유역 변경으로 섬진강에서 동진강으로 유입된 물은 정읍 동진강 본류를 따라 흐르다가 정읍시 태인면 낙양리 취수보(取水洑)에서 일단 멈춘다. 이곳에 모인 물은 동진강 본류와 김제시 광활면 방면, 정읍시 고부면 방면 등 세 갈래로 나누어진다. 낙양 취수 문은 1927년 동진강 본류인 정읍시 정우면 대사리 사동마을과 태인면 낙양리 내이마을 사이를 막은 취수 문인데, 한국농어촌공사는 매년 이곳 낙양 동산에서 한 줄기의 물이 백 갈래로 퍼져 광활한 농경지를 적셔 준다[낙양 동산에 일원종시백파(一源從是百派)라고 적힌 기념비가 있음]는 의미로 백파제(百派祭)라는 통수 기념식을 연다. 2020년 4월에 제93회 백파 통수식이 열렸으며, 이곳에서는 4월부터 9월까지 농업용수를 공급한다.
낙양 취수 문에서 분리되는 세 갈래 물줄기 중에서 동진강 본류의 북쪽으로 만들어진 김제 간선[약 26㎞, 공급량 25톤]은 폭 14.5m로 1927년 2월에 완공되었는데, 낙양리에서 김제 백산 저수지, 만경읍의 능제를 거쳐 김제 광활면 간척지까지 연결되어 있다[1949년 광활면으로 승격]. 광활 간척지 사업은 1923년 10월부터 시작되어 1927년 가을에 방조제[10㎞, 학당마을~거전마을] 축조를 완성하였고, 이후 1935년까지 농지 조성 공사가 이루어졌다. 광활 간척지 사업이 가능한 것은 김제 간선에 의한 농업용수 공급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 주민들의 생활은 광활면 출신인 임영춘이 쓴 「갯들」[1981]이라는 소설 속에 잘 나타나 있다. 또 하나의 물줄기인 정읍 간선[20㎞, 공급량 4.5톤]은 동진강의 남쪽으로 흘러 정읍의 이평면을 지나 부안군 백산면에서 동진강 본류와 합류하는데, 1927년 2월 김제 간선과 함께 완공되었다.
그리고 1965년 섬진강 댐의 완공과 함께 칠보 발전소[일명 섬진강 수력 발전소]에서 부안군 계화 간척지까지 약 67㎞의 동진강 도수로를 건설하여, 칠보 발전소에서 수력 발전으로 이용한 물을 부안군 하서면 청호 저수지까지 끌어 들여 계화도(界火島) 간척에 필요한 농업용수를 공급하였다. 계화도 간척 사업은 1963년부터 1968년까지 제1방조제[3,556m, 서쪽 방조제, 계화도~부안군 하서면 의복리[현 계화면 의복리] 남돈마을], 제2방조제[9,254m, 북쪽 방조제, 계화도~부안군 동진면 안성리 문포마을]를 완공하였다. 그리고 1978년까지 10여 년에 걸쳐 내부 간척지를 조성하였으며, 섬진강 댐으로 인해 수몰된 지역 주민 2,000여 세대가 이주하였다. 1983년에 계화면으로 승격되었다.
이와 같이 동진강은 동쪽의 노령산맥에서 서쪽의 서해로 흘러가는 44.7㎞의 짧은 하천이지만[정읍천 기준 51.0㎞], 호남평야의 중심부를 흐르는 하천이었기 때문에 과거 삼국 시대부터 농업용수 공급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본류의 하류 부분은 바닷물이 밀려오는 감조 하천이었기 때문에 농업용수로 이용하는 데에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본류보다는 지류에 벽골제[원평천]나 눌제[고부천] 등을 축조하여 제방 겸 저수지로 이용하였다. 그러나 1920년대에 노령산맥 동쪽의 섬진강 물을 유역 변경으로 확보하면서, 1920년대에 김제 광활 간척 사업을 가능하게 하였고, 1960년대에는 부안 계화도 간척 사업을 가능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