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1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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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東里 |
영어공식명칭 | Daedong-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 대동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용범 |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대동리(大洞里)의 원래 이름은 한골로 큰 마을이라는 뜻이다. 연중(蓮中)마을은 산속 깊은 곳인데도 대밭이 반달형으로 우거져 있어 기이하게 여기고 마을 터를 잡고, 마을 이름도 죽리(竹里)라고 하였다. 지금도 노인들 중에는 ‘죽리’라고 해야 알아듣는다고 한다.
대연(大淵)마을의 원래 이름은 ‘큰방죽골’이다. 중심 마을인 큰방죽골과 공방뜸, 소금애피 세 개의 뜸으로 형성되었는데, 공방뜸은 나무꾼들이 산에서 나무하여 가지고 내려와 쉬면서 볏짚으로 공을 만들어 공차기를 했던 곳으로 근동 마을 청년들의 운동장 구실을 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율못[율지(栗池)] 마을은 늪과 못이 많았던 들을 개간하고 만든 마을로 마을 앞 방죽이 밤과 같이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부안군 건선면의 대중리, 율지리, 사거리, 대연리, 연정리, 용호리, 월평리, 파산리의 각 일부와 부안군 입상면의 우평리, 상림리, 하림리, 하석리의 각 일부, 고부군 서부면의 신흥리 일부를 병합하여 부안군의 건선면 대동리로 개설하였다. 1931년 7월 건선면을 줄포면으로 개칭하였다.
[자연환경]
줄포면 시내에서 동북쪽 줄포-고부-정읍으로 통하는 지방도 제710호선 4㎞ 지점의 들판 한가운데에 자리하였다.
[현황]
대동리의 동쪽은 정읍시 고부면의 신흥리와 강고리, 남쪽과 서쪽, 북쪽은 줄포면의 난산리, 신리, 장동리와 접한다. 2020년 12월 31일 현재 면적은 4.06㎢이며, 원대동리·연중리·대연리·율지리의 4개 행정리에 121가구, 221명[남 104명/여 11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원대동(元大東)마을은 1789년(정조13) 발행한 『호구 총수(戶口總數)』에 건선면의 대동상리(大洞上里)와 대동하리(大洞下里)로 기록되어 있다. ‘동(東)’ 자를 쓰지 않고, ‘동(洞)’ 자를 썼다는 점과 그 시대에도 마을이 컸기에 상리(上里)와 하리(下里)로 나누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마을 뒤 연지(淵池) 등에는 가뭄이 들면 비를 내려 달라고 비는 기우단(祈雨壇)이 있었는데 이에 대한 설화가 전한다.
연중마을은 줄포 시내로부터 동북으로 줄포-고부-정읍으로 통하는 지방도 제710호선 2㎞ 지점에 있는 마을로 서쪽으로는 보안 제내마을과 동남으로는 서해안 고속 도로를 사이에 두고 원대동마을과 이웃한다.
대연(大淵)마을은 줄포 시내로부터 동북으로 줄포-고부-정읍으로 통하는 지방도 제710호선의 3㎞ 지점 도로 변에 자리한다. 마을 앞들에 있는 큰 방죽은 수원이 풍부하여 이웃한 대동들까지도 이 물로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율지[율못] 마을은 줄포 시가지에서 고부-정읍으로 통하는 지방도 제710호선의 5㎞ 지점에 정읍시 고부면 신흥리와 한 마을을 이루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1914년 일제가 내세운 지리적 불균등을 해소하고 행정의 편의를 도모한다는 행정 구역 개편의 목적과 달리,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채 마을 한복판을 선긋기 하듯 그어서 한쪽은 정읍시 고부면이 되고 한쪽은 부안군 줄포면이 되었다. 승용차 한 대도 진입하지 못할 만큼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정읍 시민과 부안 군민으로 갈라진 것이다. 율지마을은 보안-부안과 줄포, 난산-흥덕, 고부-정읍으로 통하는 요로에 자리하여 예전에는 마을 안에 장터가 있었다. 『호남읍지(湖南邑誌)』[1790]에 보이는 ‘율지장(栗池場)’이 바로 이 마을에 있었던 장터로 ‘율무 장터’라고도 하였다. 당시 부안현에는 읍장(邑場) 두 곳과 호치장(胡峙場), 동진장(東津場) 등 총 여덟 곳에 장터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율지장은 그중 한 곳이다.
율지마을에 있었던 대동초등학교는 1946년 9월 21일 줄포국민학교 대동분교로 개교하였다. 1950년 6·25 전쟁이 나면서 휴교하고 학교 업무 일체를 본교인 줄포국민학교로 이관하였다. 1951년 대동국민학교로 인가되어 다시 개교하였고, 농촌 인구가 감소하면서 1995년 폐교하여 그 자리에 대동교회가 들어섰다. 마을 방죽과 관련한 「장자못 설화」가 전한다.